아라비안나이트
알라딘이 양탄자에 올라 날고 있다! 바그다드 공항에 내리면 맨 먼저 알라딘과 양탄자가 보인다. 공항 건물 벽에 떡 하니 걸려있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알라딘의 요술램프' 이야기는 그 신비로운 지니와 함께 디즈니 영화로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양탄자 위에 올라탄 주인공이 하늘을 날며 펼치는 모험은 마치 꿈결 같은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천일야화, 왠지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 속, 황금빛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느낌. 하지만 천 가지의 '야한 이야기'라는 엉뚱한 오해는 접어두자. 그럼 도대체 천일야화千一夜話란 무엇일까?
옛날 옛적 페르시아, 사냥을 즐기던 성군 샤리아 왕은 어느 날 자신이 사냥터에 나간 사이 흑인 노예와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를 발견한다. 왕은 그 자리에서 둘을 처형하고, 세상을 향한 믿음마저 처형해버린다. 그날 이후 그는 전국 처녀들을 불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차갑게 목숨을 끊어버리는 잔혹한 습관을 들인다. 이 나라 딸들은 꽃처럼 피지도 못한 채 꺾여가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기 딸을 감추기 급급했다.
그런데 그때, 모래폭풍을 헤치듯 한 여인이 나타난다. 이름은 셰헤라자데. 그녀는 재상의 딸로, 아름다움과 지혜를 동시에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과감하게 왕에게 나아가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자청한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단순히 하루를 살아남는 데 있지 않았다. 그녀는 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왕이시여, 오늘 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날 밤부터, 셰헤라자데는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상상 속의 마법 양탄자를 타고 날아오르듯이, 그녀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왕의 마음속 깊은 곳을 날아다녔다. 어느 날은 에로틱하고, 어느 날은 긴장감 넘치는 모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흡사 은밀한 커튼을 살짝 내린 듯 이야기를 멈췄다. 그러고는 왕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음 이야기는 내일 밤에요, 전하."
이것이 천일, 그리고 하루를 더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왕은 매번 셰헤라자데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처형을 미루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왕의 마음에 묶여있던 어둠을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꼭 길 잃은 낙타가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이, 왕은 매일 밤 그녀 이야기에 목말라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깨닫고, 셰헤라자데를 왕비로 삼으며 성군으로 돌아간다. 그 결과, 이 나라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천일야화One Thousand and One Nights' 혹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시작이다.
페르시아 설화의 이름이 왜 아라비안나이트로 불리었을까?
아래 편에서 알아봤듯이 페르시아(이란)와 아랍은 민족과 언어가 다른데 말이다.
이 책이 만들어지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겪은 문화적 융합과 서구권의 네이밍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천일야화'의 뿌리는 고대 페르시아의 설화집인 <헤자르 아프사네(Hezar Afsane, 천 개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8~9세기 이슬람 황금기에 아랍 세계의 중심지였던 바그다드로 흘러 들어오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페르시아어 원전이 당시 지식인들의 공용어였던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야기의 무대 또한 페르시아에서 바그다드와 같은 아랍 도시들로 바뀌었고, 등장인물도 이슬람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 같은 아랍 인물들로 대체되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읽는 책은 아랍의 문화와 종교색이 짙게 입혀진 버전인 셈이다.
둘째, 이 설화집이 서구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세기 초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에 의해서였다.
그는 아랍어 필사본을 바탕으로 프랑스어 번역본을 출간했는데, 이때 제목을 <Les Mille et une nuits (천일야화)>라고 지었다.
이후 이것이 영어로 중역되면서 <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s>라는 제목이 붙었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아라비안나이트'가 고유명사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셋째, 당시 유럽인에게 중동 지역은 페르시아든, 아랍이든, 인도든 구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동방(Orient)의 이미지로 묶여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랍어로 쓰여 있고 이슬람 문화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아랍의 밤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이야기'로 인식되는 것이 훨씬 직관적이고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뿌리는 페르시아였으나, 꽃은 아랍에서 피었으며, 이름은 유럽인이 지어주었다 쯤으로...
그 이야기는 모래 한 알 한 알에 담긴 이야기처럼, 신비롭고도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펼친다.
바그다드 시내, 알리바바 광장에 가면 천일야화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석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장면은 시간의 장막을 걷어내고 과거로 들어가게 한다. 알리바바의 영리한 여종 카흐라마나가 도적 40명이 숨어든 항아리에 뜨거운 기름을 부어 주인을 살리는 그 순간이 조각되어 있다.
물론 현실은 뜨거운 기름 대신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와, 맹렬한 태양 아래 지나가는 이들의 더위를 식혀준다. 사막의 한가운데서 만난 시원한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다. 욕심 많은 형과 착하고 가난한 동생이라는 흥부전의 모티브가 깔린 교훈적 이야기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과 함께 전해진다.
또 다른 천일야화 속의 이야기, '신드바드의 모험'이 있다.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신드바드는 일곱 번이나 바다를 향한 모험을 떠난다. 그 여정은 진정 끝없는 모래사막을 넘어 바다로 나아가는 듯하다. 매번 위기와 모험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신비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천일야화는 그저 오래된 이야기책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모험, 배신과 구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정녕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행렬처럼, 이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풍경을 그려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