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심 이슬람 이야기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슬람교 내에서 발생한 두 주요 분파다. 그들은 모두 이슬람교를 믿지만, 그 분열의 시작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 후계자를 둘러싼 정치적·역사적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무함마드가 632년에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한 이후, 이슬람 공동체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에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나중에 시아파를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같은 무함마드의 절친한 추종자가 합의를 통해 차례로 칼리프가 되면서 수니파가 형성되었다.
알리는 뒤를 이어 네 번째 칼리프가 되었지만, 5년도 지나지 않아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했고, 알리의 죽음은 시아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무함마드의 유일한 직계 혈통이 네 번째 칼리프가 된 것도 못마땅한데 감히 알리를 죽이기까지 해? 라며 너희와는 한 하늘 아래서 같은 종교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며 치를 떨게 되었고, 이후 시아파는 메카를 떠나 이라크의 카르발라로 이주했다.
수니파는 자신을 정통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메카에 남았다. 따라서 시아파와 수니파는 종교 논쟁으로 분리된 것이라기보다는, 죽고 죽이는 원한 다툼 등 역사적 갈등으로 갈라진 것이다. 시아, 수니를 종파로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알리 암살 후, 그의 아들 후세인까지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시아파와 수니파 간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후세인의 죽음을 기리는 시아파 아슈라 행사는 후세인의 희생을 기억하며 그가 겪었던 고난을 되새기는 의식이다. 이 행사는 시아파가 수니파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란은 시아파,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중심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 두 나라는 정치적 대립을 이어오고 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이란은 러시아, 중국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등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종교적인 문제를 넘어 역사적·정치적인 문제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라크인처럼, 같은 가족 내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