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존의 핫 플레이스

12년 만의 재회

by 다문화인

바그다드 한복판, 마치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곳이 있다. 이름하여 그린 존Green Zone. 이라크 총리실, 대통령궁, 의회 의사당과 같은 정관계 기관이 모여 있다. 미군이 이름을 붙인 이곳은 꼭 고요한 성채처럼 보인다.


때때로 시위 인파나 로켓 공격이 이어져 비상이 걸리지만, 그 바깥으로 한 발짝만 내디디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바로 레드 존Red Zone, 긴장감이 도사리는 곳이다. 그린 존은 인터내셔널 존International Zone이라고도 부른다.



처음 부임했을 때, 대사관은 레드 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티그리스강 남쪽에 있는 큰 일반가옥 두 채가 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이듬해 말, 신청사가 완공되어 그린 존 안으로 이전했다. 새로 자리 잡은 대사관의 이웃은 이탈리아와 미국 대사관. 각 나라의 대사관은 흡사 견고한 요새처럼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외교의 장이 열렸다.


그러던 어느 날, 국경일 행사에 초대받아 이탈리아 대사관에 갔을 때,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세상은 좁다고 했던가, 카슈미르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탈리아 친구 지울리아노와 재회한 것이다. 12년이 흘러 우리는 전혀 다른 곳, 전혀 다른 상황에서 마주쳤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그때 그 시절 동료애와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대 전장에서 다시 만난 전우처럼, 우리는 짧지만 깊은 눈인사를 나누며 한동안 회포를 나누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는 듯, 각자 속으로 '야, 너 나이 들어 보여.'라고 쳐다보면서 웃었을 수도….




그리고 그린 존에는 흥미로운 장소들이 있다. 먼저 대사관에서 가까운 알 시주드 궁. 사담 후세인 대통령 정권 시기에 지어진 궁전 중 하나로, 그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인 건축물이며, 그는 주요 외교 행사와 접대 장소로 활용했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연합군이 궁전을 군사 기지로 개조해 사용했으며, 사담의 통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전쟁 중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주요 구조물은 보존되었고 그의 비밀 방이나 터널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연합군 병사들은 궁전 내부의 화려함과 당시 권력의 흔적을 직접 경험하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전한다. 현재 알 시주드 궁은 일부 이라크 정부에 반환되어 행정적으로 사용되며, 제한적인 접근만 허용된다. 이 궁전은 이라크 현대사의 굴곡을 상징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이라크 국군의 날인 1월 6일, 무명용사탑에서 거행되는 헌화식은 그린 존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이 붕괴하였고 이라크는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들어갔다.


1921년, 영국은 하심 왕가 출신 파이살 1세를 이라크 왕으로 세우고, 그해 1월 6일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군 첫 부대가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이로써 이라크는 오스만제국 시절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정규 군대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국가 정체성과 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이날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그날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외교사절이 모여들고, 모두가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며 한 송이 꽃을 바쳤다. 그 시간만큼은 바그다드의 혼란도 잠시 잊힌다.


나의 조국이여 나의 조국이여
그대의 언덕 위에
위엄과 아름다움

빛과 영광이 서리네
그대의 숨결 속에서
삶과 구원

기쁨과 희망이 피어나네
그대를 보게 될까
평화롭고 번영하며
영예로운 모습으로
그대를 보게 될까
하늘의 정상에 닿는 그대를
나의 조국이여 나의 조국이여


_ 이라크 국가, '나의 조국' 중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승리의 손Victory Arch’. 이라크 역사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치켜든 거인의 손처럼 보인다. 그 거대한 손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면 ‘퍼레이드 그라운드’가 펼쳐지는데, 끝없이 이어진 그 공간은 한때 이곳에서 펼쳐졌을 무용을 짐작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린 존 옆을 따라 흐르는 티그리스강. 이 강을 바라보면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강은 그저 물줄기가 아니다.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키운 생명수였고, 그 문명의 이야기는 지금도 강물 속에 흘러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 물줄기를 보노라면 이집트의 나일강,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그리고 중국의 황하까지, 고대 문명이 하나같이 강가에 피어났다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티그리스강을 마주한 순간, 나는 과거와 현재가 섞인 묘한 시간 속을 여행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린 존은 단순한 중심 구역 그 이상이다. 그곳에는 바그다드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전 세계 역사와 정세, 외교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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