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가요, 행복해서요
인생에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할까.
요즘 들어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 때는 사람들이 나를
‘방랑자’라고 불렀다.
성인이 되면서는
‘역마살’, ‘한량’이라는 말도 들었다.
최근엔 직장 선배가 말했다.
“너 결혼했다는 소식 듣고 솔직히 좀 놀랐어.”
“왜요?”
“자유로운 영혼이라, 너만큼은 안 할 줄 알았거든.”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안정보다 도전,
정착보다는 모험,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여행자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사람 잘 봤다.
20대의 나는
주말마다 여행을 떠났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쫓았다.
연애도 그렇고
후회 없이 놀기도 하고
해보고 싶던 건 거의 해본 편이다.
그런 내가,
곧 결혼 2주년을 맞는다.
다정한 남편을 만나
알콩달콩 살고 있다.
놀라운 건
결혼 후 2년 동안
여행은커녕,
완벽한 집순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애할 땐 주말마다 하루는 꼭 외출했는데,
지금은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만족스럽다.
이렇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가끔은 내가 내 자신이 낯설다.
집에서 노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다니..
그러다 갑자기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평생 느끼는 에너지나 감정,
즐거움과 외로움,
욕망과 열정 같은 것도
정해진 총량 안에서 흐르는 건 아닐까.
요즘 나는
여행에도,
사람 만나는 일에도
이상하리만치 흥미가 없다.
하고 싶던 걸 실컷 해봐서일까.
이젠 그런 생각조차 잘 나지 않는다.
집에서 맛있는 걸 먹고
고요함을 즐기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아마,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를
이제야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다.
5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와 많이 달랐고,
지금의 나는 또
5년 후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하튼,
이제는 다양한 경험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들이 더 좋다.
다양하게 살아온 내 모습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5년 후, 또 다른 나를 향해.
“아직 닿지 않은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