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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음의 어려움과 고양이

옥시토신 (2)

by 돌장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늘 어려웠다.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는 더욱 그랬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 만난 누군가가 불쑥 지적하기 전까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줄 알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던, 아니 못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음이 맞다고 느낀 친구들,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친구들과 원하지 않게 멀어지곤 했다. 귀찮음의 대상이 될 것만 같아서 또는 호감을 표시한 친구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항상 관계를 회피해 왔다. 지금까지 우정이 이어지는 나의 오랜 친구들은 모두 매우 외향적인 성격으로 답 없이 숫기 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나를 제대로 알게 되면 모두가 날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강박이 있었다. 혼자일 때 마음이 편했지만 외로움은 싫었다. 못난 생각 때문에 놓쳐버린 좋은 인연들이 한 명, 한 명씩 눈에 어른거린다.


스스로 자처한 고립의 악순환을 지금은 조금 극복했다.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여전히 잘 못하지만 적어도 타인이 내리는 평가가 이제는 덜 두렵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남편의 무한한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어쩌면 둘 다겠지만 이러한 변화가 참 다행스럽다. 요즘에는 남편뿐 아니라 태어난 지 200일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기에게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일상이 기적 같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삶의 배경에 관계없이 그저 결이 맞아서 맺게 되는 깊은 인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목마름은 아마도 욕심일 것이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면서도 마음의 벽이 없는 그런 관계를 언젠간 가질 수 있을까? 인생은 길다지만 사람의 인연은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 친구를 반드시 만나게 되리라 막연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손에 깍지를 쥐듯이 마음이 서로 적당한 만큼 맞는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삶의 즐거움과 슬픔을 은은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길, 만나게 되면 그때는 그 사람을 놓치지 않기를 나 스스로에게 바란다.


살면서 조금씩 마모되고 지칠 때가 있다. 비록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결이 매우 맞는 친구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나의 곁에는 소중한 가족이 있다. 사랑하는 나의 남편, 아기, 그리고 고양이 둘. 단지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이들로부터 직접적인 에너지를 채굴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르몬을 통해서다. 이 호르몬은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 제일 좋은 점은 이 호르몬 양 조절에 내가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옥시토신이다.


- 옥시토신: 친밀감, 유대감, 공감 능력을 증진시킨다. 사랑하는 사람 및 존재와의 신체 접촉이나 신뢰 형성 상황에서 분비된다.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세상살이에 유난히 지친 하루의 끝에 잠시 어디엔가 누우면 우리 집 두 고양이들이 나의 마모됨을 감지하여 내 곁에 바싹 붙어 눕는다. 내가 힘들 다는 것을 어찌 알고 나를 이렇게 위로할까? 양쪽에서 고양이들이 나에게 옥시토신을 마구 건넨다. 나의 긴장은 이완되고 그와 동시에 세상이 조금 덜 두려워지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난다. 파브르와 올리브 이 어린 두 고양이들은 이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나만의 치트키다. 어쩌면 이 고양이들 덕분에 바깥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을 덜 찾는 걸 수도 있다. 우리 고양이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길, 오래오래 함께 사랑하는 가족으로 지낼 수 있길 마음속으로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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