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흑백 화면 속 어렴풋한 장면들과 흐릿한 이야기들.
제목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애써 떠올린 단서들로 찾아낸 그 영화는 바로 Forbidden Planet, 우리말 제목으로는 금단의 별이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그렇게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을까?
지구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는 이야기.
처음엔 외부에 실체화된 공포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괴물은 어떤 한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외부의 적이라 여겼던 그 존재가,
사실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그림자라니—
이 설정은 내게 너무나도 이상하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어린 나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안겨주었고,
스토리는 잊혀졌어도 그 한 장면만큼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며칠 전, 그 영화를 다시 찾아보았다.
1950년대 흑백영화이니 지금의 시선에서는 조잡하고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 장면이 어떻게 지금까지 내 안에 살아남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 행성에는 먼저 도착해 있었던 모비우스 박사와 그의 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멸망한 외계 문명의 과학기술을 실험하고 있었고,
그 지식을 통해 자신의 지능을 강화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은 무의식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괴물은 그의 무의식, 곧 *이드(id)*로부터 생성된 것이었다.
이드 — 프로이트가 말한 세 가지 마음의 구조 중 하나.
자아(ego), 초자아(superego), 그리고 이드(id).
그중 이드는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한,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이다.
욕망, 성, 공격성 — 파괴하려는 에너지와 사랑하려는 에너지의 뿌리.
이 모든 것이 억압되어 깊은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다가,
때로는 괴물의 모습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우리 마음에서
불안, 공포, 분노, 상처받은 마음 등 두려움이 극대화될 때,
그 에너지가 상상의 괴물을 만들고,
그 괴물은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친다고 말이다.
살아오며 나를 해쳐온 수많은 외부의 적들—
그들이 모두 ‘밖에’ 있다고 굳게 믿어왔지만,
어쩌면 그들은 내 안에서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두려움이 괴물에게 힘을 주고 있고
나는 그 괴물에게 상처받으며 괴로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라."
그 순간,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환영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무언가를 ‘안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저 조용히 질문해보는 것.
정의된 해답을 찾기보다는,
‘알 수 없음’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
호기심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볼 때,
우리 안의 어두운 그림자도 조용히 진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나는 지금도 내 안의 그림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려 애쓰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의 괴물과 화해하는
첫걸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