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by 텅빈글방

언젠가 친구와 책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좋아하는 책 두 권을 선물로 건넸다.

로버트 존슨의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고요함의 지혜』.

오랫동안 아껴왔던 책들이었다.


며칠 후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 감상문을 올렸다며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좋은 책을 소개해줘서 고마워."

그런 한마디를, 마음 한켠에서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쓴 감상문을 읽는 순간, 나는 끔찍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이가 없었고, 분노로 몸이 떨렸다.

‘이런 인간도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조롱하고 깎아내리고 있었다.

내가 정성스럽게 선물한 책을, 하찮은 것처럼 평가하며

자신이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듯 뽐내는 문장들.

그 순간, 분노로 양손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머리끝까지

열이 치솟았다.


내가 소중히 여긴 것이 하찮게 여겨지는 순간,

나 자신까지 하찮게 취급받는 듯한 모멸감이 몰려왔다.


내가 준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니,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시간을, 마음을, 선물을 낭비한 거였다.


지금 읽어보면 그때처럼 그렇게 분노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의 무엇이 그렇게 분노를 부채질했을까?

그 친구의 의도는 평소처럼 잘난 척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그 책보다 자신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나를 조롱하고 깔보는 것으로 비춰졌고,

내가 하찮게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굴욕감에 휩싸였다.


시간이 흐른 후,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였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술에 잔뜩 취해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 겁쟁이 새끼야.......”

그 뒤에도 말들이 이어졌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너무나 쪽팔리고 수치스러웠었다.

사실 나는 늘 스스로가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감 있어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들킬까 불안해하며 살았다.


그때 그 친구는, 내가 애써 숨기고 있던 내 모습을, 열등감을

무자비하게 끄집어냈다.

늘 감추고 싶었던, 소심하고 두려워하던 내 모습.


그것도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었던 친구에게서 들었을 때 느꼈던 배신감과 수치심은

너무나 컸다.

그때 느꼈던 굴욕감과 수치심에

손에 주먹이 쥐어지면서, 마음속으로는 그 친구를 지근지근 짓밟는 것을 상상하였다.

그때 느꼈던 비참함은 어떤 것이었을까?


진정으로 나에게 모멸감을 주고 자신을 부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과거에는 그것이 외부의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술을 먹고 나에게 겁쟁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던 친구나

선물한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을 지적하면서 하찮게 취급했던 친구가

바로 나에게 모멸감을 주고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나에게 모멸감을 주고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나의 약점이나 감추고 싶은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자신이 부정하고 감춰두고 있는 자신의 부분인 그림자를

삶은 계속해서 드러내도록 만든다.

온갖 사건을 동원하여서 그렇게 만든다.


자신이 감추고 싶은 그림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도망칠 곳도 없는 것 같다.


결국 마주해야 한다.

내 안에 그런 모멸감과 수치심이 없었다면

그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크게 충격을 받고 수치심을 느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 경험들은 나에겐 진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삶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네가 얼마나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지 보라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차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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