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 설 세기 4
라와이 비치는 빠통 비치보다 걷기 수월하다. 훨씬 덜 혼잡하고 유흥업소나 유흥 종사자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한 끄트머리로 온 사람들인가 그런가 관광객도 훨씬 더 얌전한 듯했다. 물론 인도가 좁고 건널목, 차도 신호등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전날 빠통 거리에서 다들 스트레스를 받은 터라 또 걷자고는 못했고, 운 좋게 툭툭이를 한 대 잡아 다 같이 탄다. 여기 와서 툭툭이도 타 본다며 다들 신기해했다.
라와이 비치에는 물놀이를 하는 사람보다는 보트들이 즐비하다. 섬 투어 프로그램 운영 부스와 홍보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이곳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나이한 비치가 있다. 그곳에선 물놀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미 라차섬 투어를 하고 난 뒤라 굳이 물놀이하러 바닷가에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시어머니의 이번 여행 로망은 라와이 시푸드 마켓에서 랍스터회를 드시는 거였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둘러보시고는 좋은 해산물은 이왕이면 좋은 식당에서 드시고 싶다며 발길을 돌리셨다. 우리를 모두 중국인으로 인지한 탓에 상인들은 연신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했다.
그 와중에 여기 싫다면서도 우리 딸이 한 컷 건졌다. 라와이 시푸드 마켓을 뒤로하고 우리가 들른 곳은 그 근처의 퓨전 식당이었다. 남편과 내가 먼저 들어가 메뉴판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들어갔다. 동양인보다는 서양인들이 더 많이 보였다. 적당히 캐주얼하고 적당히 분위기가 좋았다.
안쪽부터 게살 덮밥, 새우볶음, 오징어 볶음밥, 똠얌꿍, 도미 튀김이다. 물론 메뉴명은 정확하지는 않다. 주문 착오가 있어 도미 튀김은 의도치 않게 나온 메뉴인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맛있었다. 도미살이 깍둑썰기 되어 튀겨졌고, 라임과 오이와 당근, 고추 등과 버무려져 나왔다. 옆에 있는 쌈 야채는 깻잎처럼 생겼지만 깻잎은 아니고 허브 맛이 났다. 모든 메뉴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시어머니는 더운 지방이라 라임을 많이 쓰는 것 같다며 덕분에 모든 음식이 맛있고 속도 편하다고 하신다. 여기서라도 만족해하시니 다행이다.
시어머니는 대부분의 일과를 집에서 보내시는 살림의 여왕이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살림을 모으고 쓸고 닦는 일 못지않게 여행도 재밌는 일이라고 느끼게 해드렸으면 했다. 음식도 예민한 편이셔서 되도록 해 드시는 편이시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드셨던 음식이 모두 마음이 드신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나의 계획에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었다 한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나의 여행에 집중하고 다른 가족들의 기분에는 그다지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이렇게 딸기 에이드를 시켰다. 태국 딸기는 한국 딸기보다 많이 시고 덜 달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맛있게 식사하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2층에도 올라가 보았다.
식당 화장실에서는 도마뱀 한 쌍을 발견했다. 식당을 나와 라와이 비치를 가족들과 걸었다. 이곳 라와이 비치에는 한국인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중국인이라 여겼던 누군가가 한국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 중국인 같았다. 한국어가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 너무 먼 곳으로 식구들을 데려온 건 아닌지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나도 태국 여행이 처음이었고, 이 정도로 한국인이 없는 동네인지는 몰랐다. 나중에 대항항공 체크인을 하며 직원으로부터 한국말을 들었는데 시어머니가 엄청 반가워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Mixxmall이라는 곳에 들렀다. 우리가 머문 숙소와 같은 계열의 쇼핑몰인지, 출국하기도 전에 숙소로부터 Mixxmall에 관한 장문의 홍보 메시지를 받았었다. 1층에는 태국의 대중적인 편의점인 Tops가 있었고, 스타벅스도 있었다. 2층에는 스시 집과 예쁜 기념품 숍이 있었다. 상호가 'Give Good'인 곳에 들어갔다. 여기서는 면 소재의 다양한 기념품, 옷, 가방 등을 팔고 있었고, 모두 다 예뻤다. 정실론과 센트럴푸켓에서도 이보다 예쁜 숍은 가보지 못했다. 두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줄 작은 코끼리 인형을 여러 개 샀고, 나는 고민고민하다 떠나기 직전 목베개를 샀다.
저 코끼리 모양 목베개는 한국 돈으로 2만 5천 원 정도 했고 키링 인형은 세 개 8천 원 정도 했다. 나는 코끼리 얼굴이 없는 그냥 목베개를 만 원 정도 주고 샀다. 돌아오는 길 재인이는 목베개를 요긴하게 썼고, 나는 목베개보다는 등받이 기능으로 요긴하게 썼다.
이곳은 킴스 마사지 라와이 점이다. 킴스 마사지는 푸켓에 여러 지점을 두고 있고 대부분 평판이 좋다. 운 좋게도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이렇게 지점이 있었다. 남편과 시어머니와 시누는 이곳 마사지를 좋아해서 매일 저녁 갔다. 나는 마사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한 번만 갔다.
한 번은 재인이가 식당에 뉴진스 굿즈 부채를 놓고 왔다며 우는 바람에 다른 가족들은 마사지받으러 들어가고 나만 마사지 숍을 나와 다시 식당으로 갔다. 결국 부채는 찾을 수 없었지만 재인이는 자신을 위해 마사지를 포기하고 식당에 와준 내게 고맙다며 아이스크림을 쐈다. 식구들이 많아 차마 들르지 못했던 기념품 가게도 들러 재인이는 예쁜 팔찌와 꽃핀도 살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이 때문에 내가 마사지를 받지 못한 것을 엄청 안타까워하셨고, 결국 시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출국 전 킴스 마사지에 한 번 갔었는데, 나한테는 마사지가 좀 셌고, 남자한테 이 자세 저 자세로 마사지를 받는 상황 자체가 좀 불편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마사지를 패스해도 될 것 같다.
숙소 근처에는 과일가게도 있었다. 소문대로 이곳 과일은 정말 맛있다. 자몽은 시지 않으면서도 알알이 톡톡 터졌다. 용과는 속이 하얀 것과 빨간 것이 있었는데 빨간 게 좀 더 달았다. 아보카드도 있었고 몽키 바나나도 있었다. 몽키 바나나는 한국에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집 앞마당에서 바나나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망고와 망고스틴을 가장 맛있게 먹었다.
이 사진은 남편이 찍은 것이다. 숙소에 비치된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찍었나 보다. 자전거는 원하면 언제든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지만 남편만 이용했다.
다들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아 단체 사진이 없다. 그래도 우리 세 가족은 단란하게 몇 컷 남겼다. 남편은 푸켓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다음에 우리 셋이 한 번 더 오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