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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푸켓으로 떠난 이유

푸켓에서 설 세기 6

by 정윤희 Feb 14. 2025

십여 년 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 인터넷 여행 기사에서 푸켓의 예쁜 바다를 봤었다. 그 영롱한 물빛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페이지를 화면에 띄어 놓고 업무를 보았다. 처음으로 동남아 여행이 해보고 싶던 순간이었다.

야근을 밥 먹듯 했던 회사 생활에 치여 해외여행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 며칠 해외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신혼여행이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난 신혼여행지로 푸켓을 선택하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상담하면서 당연히 푸켓의 맑은 바다를 떠올렸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결국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발리보다 꽤 많이 차이가 났었을 거다. 당시엔 푸켓을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는지 직원도 추천을 잘해주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 봤다면 얼마든지 푸켓으로 여행 갈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거다. 결혼 경비에서 다른 부분을 줄여서 신혼여행에 보태도 되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자유여행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수수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여정을 빼면 얼마든지 우리는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 당시 난 나 자신이 스스로 꿈을 꾸고 이루어 가는 존재라는 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것들을 이루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 신랑 주도로 결혼식은 준비되고 있었고 신혼여행지의 결정도 신랑과 여행사 직원의 몇 마디 상의만으로 쉽게 결정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좀 더 주도면밀하지 못했던 나를

이제 와 후회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결혼생활에서도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그렇게 회사 생활에 보태 신혼 생활마저

정신없이 적응해 나가기 바빴다. 결국 주거지도 신랑이 원했던 대로 결정되었고 아이가 태어나자 내 일자리도 사수하지 못했다. 


몇 번의 감정의 폭발과 꽤 수위가 높았던 싸움 끝에 결혼 생활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갔다. 하지만 직장의 끈을 놓아버리고 홀로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여느 여자들의 메인 삶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재능 봉사 형식으로 근근이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나의 장래는 오랫동안 캄캄했다. 

하지만 결혼 13년 차에 시댁 가족과 함께 했던 이번 여행의 계획은 내가 직접 짰다. 여행지는 푸켓이었다. 신랑이 그래도 좋은 상품이 있을지도 모르니 여행사를 방문해 보자고 했다.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가 좀 안심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만하면 순순히 내 말을 들어줘도 좋으련만 아직 우리 남편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자신의 고집을 세운다.

역시나 여행사 직원은 내가 가고 싶은 푸켓이 아닌 남들이 다들 가는 다낭을 추천한다. 하지만 다낭의 어느 리조트도 사전에 내가 알아봐 놓은 숙소보다 좋은 옵션을 지니지 못했다. 경비도 내가 짜 놓은 계획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어딜 가든 한국인을 마주칠 수 있다는 다낭보다 푸켓은 해외여행 온 느낌이 더 난다고 한다. 무엇보다 푸켓에는 맑은 바다가 있었다. 나중에 남편은 그곳에서 헤엄치며 자신이 맑고 깨끗한 바다와 자연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기뻐했다.

여정은 가족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무난하면서도 여유 있는 일정을 짰다. 아이들과 시어머니가 계실뿐더러, 시누이도 더운 날씨에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시내 관광, 파인 다이닝, 고급 마사지, 반일 섬 투어를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해내고 나머지 시간은 리조트 내부에서나 주변에서 쉬기로 했다. 나도 여행하며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기에 내 계획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단 나는 반드시 시밀란 섬을 가야 했다. 차로 세 시간, 배로 세 시간 거리에 있지만 난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했다. 시밀란 섬을 가고 싶은 사람은 마사지 일정 대신 갈 수 있다고 하고 미리 신청을 받았다. 희망자는 나와, 나를 차마 홀로 그곳으로 보낼 수 없는 남편뿐이었다. 딸내미마저 조금 고민하더니 마사지를 받고 싶어 했다. 혼자 가도 좋으니 당신은 마사지받으라고 강력하게 얘기했지만 결국 따라나섰다. 시누가 시어머니와 아이들을 하루 동안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내게도 좀 불편했지만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모른척했다. 대신 시누가 원하는 마사지 코스를 원 없이 넣어 주었다. 꽤 비쌌지만 아낌없이 넣어 주었다.

이렇게 오랜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이렇게 여러 명의 식구들과 동반한 여행이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 하루, 그 맑은 바다 빛을 원 없이 바라보고 오는 것이 나의 꿈이었지, 그 순간 누구와 함께 있고 없고는 딱히 그린 적도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장면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 자체가 간절했었다. 그 꿈을 이루어서 지금 정말 행복하다. 가족들과 함께한 단란한 시간은 덤으로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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