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지 말고 써먹어라, 직장은 도약대

by 고인물

뉴스를 틀면 대한민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정부는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노동시간 단축' 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근로 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고, 늘어난 여가 시간에 지갑을 열게 하여 내수 시장을 살리겠다는 계산일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참 훌륭한 시나리오입니다만, 현장에서 매일 땀 흘려 일하는 저로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 기업이라는 토양에서 이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조직에서 생산성을 높여 남보다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은 '능력'으로 인정받기보다 '여유'로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 대가는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남의 업무까지 떠안는 '벌칙'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렇다고 연봉이 파격적으로 오르는 것도 아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직장인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을 택하게 됩니다. 바로 '적당히 시간 때우기'입니다. 퇴근 시간까지 일을 늘여서 하고, 바쁜 척을 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둔 채 근무 시간만 강제로 줄인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일 잘하는 소수에게 업무 폭탄이 떨어지거나, 퇴근 카드를 찍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그림자 노동'만 양산될 뿐일 테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다소 논쟁적일 수 있겠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해고가 자유로운 세상'이 오히려 직장인에게 득이 된다고 믿습니다. 지금처럼 한 번 채용되면 정년까지 법적으로 보호받는 시스템은 언뜻 보기에 근로자를 위한 천국 같지만, 실상은 조직을 '고인 물'로 만드는 댐과 같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그저 버티기에 들어가면, 조직에는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전염병처럼 번집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입니다. 기업이 저성과자를 쉽게 내보낼 수 있고, 반대로 필요한 인재를 쉽게 뽑을 수 있는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고, 기업은 그런 인재에게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성장의 촉매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결국 시스템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직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입니다. 흔히들 직장을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라고 부르며 '버티는 것이 승리'라고 말하지만, 저는 반대로 직장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쏘아 올리는 '도약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월급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때우는 것은 도약대 위에서 낮잠을 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인프라와 월급이라는 안정적인 지지대를 발판 삼아, 치열하게 내공을 쌓고 '나만의 엔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회사는 내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이 아니라, 훗날 나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고 비상을 돕는 가장 든든한 발판인 셈입니다.

저성장 시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단순히 노동 시간을 줄여주는 정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실력으로 평가받는 공정한 시스템이 우선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버틸까'를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 도약대를 밟고 더 높이 뛰어오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버티기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주저앉지만, 비상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디로든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안정은 정년 보장 계약서가 아니라, 회사 명함이라는 안전장치 없이도 스스로 비상할 수 있는 나의 '실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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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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