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베테랑이 잉여인력이 되어가며 깨달은 것들

by 고인물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낯선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이 조직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전까지 저는 스스로를 ‘우리 회사를 꽤 좋아하는 사람’, ‘조직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베테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자기 객관화의 시간을 거친 후,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착각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했다’는 말의 비겁함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사심’ 혹은 ‘일터에 대한 애정’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여야 합니다. 회사를 정말로 좋아한다면,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설령 그 성장의 과실이 오너의 지갑을 불리는 데 그칠지라도, 최소한 조직이 나아가는 발목을 잡지는 말아야 합니다.

저는 제가 회사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제 사랑은 철저히 ‘과거형’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한때 이 회사를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오직 저를 위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효율’이라는 가면을 쓰고 회사의 업무는 최소화했고, 남는 에너지와 시간은 오로지 제가 원하는 개인적인 일에만 몰입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일이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었고, 동료들과 한마음으로 밤을 새워가며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 시절 쏟아부었던 열정에 대한 ‘보상 심리’ 뒤에 숨어, 현재의 태만함을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저랬어, 그러니까 지금은 좀 쉬어도 돼”라는 자기 위안이 제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울이 되어준 어느 미련한 뒷모습

나태해진 제 영혼을 깨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속으로 비웃었던 한 동료였습니다. 최근 회사에는 누가 봐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프로젝트에 온 힘을 다해 뛰어다니는 직원이 한 명 있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고군분투하는 그를 보며 저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습니다.

‘왜 저러지? 어차피 안 될 일인데. 힘 빼지 말고 차라리 되는 일에나 에너지를 쓰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그를 관찰하면 할수록,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안 될 것 같은 일’이라 치부했던 그 업무는 사실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단지 어렵고,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으며, 고생길이 훤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그 업무를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는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하며, 실패의 핑계를 찾거나 제가 하기 쉽고 생색내기 좋은 다른 업무 뒤로 숨었을 겁니다. 그것은 회사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철저히 저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었겠죠.

땀 흘리는 그 직원의 뒷모습은 저에게 거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뼈아픈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이 회사에 진짜 필요한 사람은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는 내가 아니라, 현재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저 사람이구나.’


스스로 ‘잉여’를 선택한 베테랑의 변명

물론 직급과 연차에 따라 맡은 역할과 책임의 무게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제게 주어진 소임은 다합니다. 하지만 딱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합니다. 더 잘해봤자 몸만 상하고, 공은 엉뚱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니 이 변화의 시작점은 2024년 하반기에서 2025년 상반기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혹독하게 일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보상은 허무했습니다. 조직은 바쁜 사람에게 더 많은 짐을 지웠고, 일하지 않는 잉여 인력은 여전히 잉여로 남을 수 있는 구조를 방치했습니다. 고생해서 만든 성과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죠. 그 부조리한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제 안의 ‘주인 의식’은 휘발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똑똑한 회사원’이 되었다고 자위했지만, 실상은 스스로 ‘고임금 잉여 인력’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스템에 대한 실망이 저의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었지만, 저는 기꺼이 그 방패 뒤에 숨는 것을 택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만족시켜본 적이 있습니까?

이제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직원입니까? 저처럼 과거의 훈장을 만지작거리며 적당히 자리를 지키는 잉여 인력입니까, 아니면 남들이 뭐라 하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필수 인력입니까? 만약 당신이 이 회사의 오너라면, 지금의 당신 자신에게 얼마의 연봉과 어떤 점수를 주겠습니까?

저는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나 제 글을 통해 늘 “직원이라는 정체성에만 안주하지 마라”, “회사 밖의 세상을 준비하라”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엄중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이 평가했을 때 충분히 ‘만족스러운 직원’이 되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직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지 못한 채,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 혹은 인정받지 못해서 회사 밖의 삶을 꿈꾸는 것은 도피에 불과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야생과도 같은 회사 밖 세상에서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만족시켜본 경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어 상대를 감동시켜본 경험은 내 안에 단단한 ‘근육’으로 남습니다. 그 근육이 있어야 홀로서기도 가능합니다.

다행히 저는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한때는 회사를 성장시킬 만큼 뜨거웠던 사람이었고, 미친 듯이 몰입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한번 그 경지에 올라본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만족시켜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 경지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자 능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퇴사를 꿈꾸든, 임원을 꿈꾸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해보십시오. 나는 나의 고용주를, 나의 동료를, 나의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는가? 만약 아직 부족하다면, 섣불리 떠날 생각을 하기보다 우선은 주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능력은 회사 안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생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잉여로 남을 것인가, 무기를 쥔 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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