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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샷시포함 특올수리, 남향, 로얄층 로얄동
우리 집의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부동산에서 올려놓은 매물 설명이다.
인터넷으로 손품을 팔 때에는 먼저 부동산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축이야 큰 차이가 없지만, 연식이 있는 아파트는 관리 여부에 따라 컨디션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컨디션은 적정 가격과도 연결된다.
보통 부동산 광고에서 쓰이는 용어들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 깨끗한 집 or 관리 잘 된 집: 인테리어 안 되어 있음
· 에어컨 교체: 인테리어는 그대로고 시스템 에어컨만 새로 설치함
· 인테리어된 집: 전체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부엌이나 화장실 등 부분 인테리어했을 확률 높음
· 올수리: 전체 인테리어를 한 적은 있으나 시간이 꽤 흐름
· 특올수리 or 최근 올수리: 최근에 전체 인테리어를 했으나 샷시는 그대로임
· 샷시 포함 특올수리: 샷시까지 포함해 최근에 집 전체를 인테리어함
우리 집은 '샷시 포함 특올수리'였음에도 기존 세입자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전세를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기존 전세가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전세 매물을 내놓기로 했다.
아직 잔금을 치르기 전인 중도금 단계였지만, 기존 세입자가 3개월 뒤 나간다는 통보를 해왔기에 서둘러 매물을 등록했다.
다행히 이틀 만에 계약 의사가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부동산 소장님 말로는 젊은 부부인데 아주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대란이라더니, 아직 등기도 나지 않은 집에 전세 계약을 하겠다는 '용자'가 나타난 셈이다.
다만 그들은 금액을 2,000만 원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옆 아파트 시세 등을 비교하며 주변 시세를 꼼꼼히 조사해 온 듯한 말투였다.
"2,000만 원 낮춰도 최근 실거래가보다 높거든요. 그러니 낮춰주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금액 조정해 주시면 등기 전이라도 가계약금 보낼게요."
남편은 부동산과 통화한 뒤 그 부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금액 조정 요청은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세를 결정하는 주도권은 엄연히 집주인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역으로 본인들이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에 맞추려는 고압적인 태도가 거슬렸다.
우리에게는 3개월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부동산 소장님 역시 지금 시장 분위기를 봐서는 전혀 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겉으로는 가격 불일치가 이유였지만, 실상은 그들의 말투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는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계약 전부터 이런 식이라면, 실제 입주 후 소통 과정이 어떠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연락이 있었지만, 등기 미완료 상태라는 점 때문에 계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동산 소장님은 어차피 인기가 많은 집이니 등기 후에 본격적으로 움직여도 충분할 것 같다고 하셨다.
실제로 시장 상황도 급변하고 있었다. 정부 규제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가 보유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은 우리 집이 유일할 정도였으니, 인기가 많을 법 했다.
그렇다고 해서 월세로 올라와 있는 매물마저도 많지 않았고, 올라오면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12월이 되어 잔금을 치르고 무사히 등기까지 마쳤다. 등기 접수 이틀 만에 완료 문자가 왔고, 부동산 소장님께 등기 완료 사실을 알려주었다.
등기 완료와 함께 곧바로 집을 계약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오늘 부동산에 젊은 부부가 신혼집을 보러 왔는데, 인상도 좋고 아주 말끔해 보여요. 남자분은 직장이 여의도고, 여자분은 을지로에 근무하셔요.
원하는 입주 날짜가 기존 세입자가 나가는 시기랑도 딱 맞네요."
그분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부동산에서 알려준 정보로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세입자의 조건이 다 갖춰져있었다.
일단 기존 세입자가 나가는 날짜와 맞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검증된 직장과 인상착의, 또 우리는 젊은 신혼부부를 원했다. 집주인이 되어보니 세입자의 조건들을 살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부부도 전세가를 낮춰 달라고 요청했다.
"등기하자마자 좋은 분이 나타난 것 같아 다행이네요. 혹시 그분들 저희 집은 둘러보셨나요?"
"네 집이 예뻐서 마음에 드신다고, 안 그래도 오늘 바로 가계약금 넣고 진행하고 싶으시대요. 그런데 자금이 조금 모자라서 2,000만 원만 협의해 주실 수 없냐고 하는데, 어떠실 것 같으세요?"
"그렇게 해주세요. 시기도 맞고, 저희도 좋은 세입자분 받으면 좋죠."
남편과 나는 그 자리에서 금액을 낮춰 달라는 것에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두 번째 부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는 세입자의 다른 조건들보다도 그분들의 태도를 보고 안심이 되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제대로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과는 나중에 어떤 논의를 하더라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세입자를 거르는 필터링에 '태도'라는 항목도 필히 추가해야할 것 같다.
또 우리 집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보여 좋았다. 이왕 사는 것 행복하고 만족감을 가지고 살면 좋을 테니까. 집주인 입장에서도 우리 집을 아껴줄 세입자를 만나는 것만큼 다행인 일도 없다.
이로써 우여곡절 끝에 서울 아파트 전세 맞추기도 무사히 완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