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예 일일 클래스를 접하게 된 계기는
선물이었다. 비유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선물.
내 생일 선물을 고민하던 친구는
조심스럽게 도예 클래스를 선물로 제안했고,
새로운 활동에 목마르던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수업 전날까지도 들뜬 마음으로 만들고 싶은
도자기 레퍼런스를 열심히 찾았다.
물론 찾으면서 이 복잡한 무늬와 모양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것은 기우였다.
도예 클래스는 보통 손으로 직접 모양을 잡는
핸드빌링과 물레 2가지 방법이 있다.
친구와 내가 선택한 수업은 2-3 가지 점토 색깔을
고른 후 색을 섞어서 손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나는 도자기를 구운 뒤 어떤 색으로 나올지
구상하고 밝은 톤으로 기본 컨셉을 잡았다.
밝은 분홍색과 노란색, 약간의 파란색을 완전히
서로의 경계가 무너질 때까지 손으로 치댔다.
차갑고 말캉한 흙이 내 손에 닿는 순간 신기하게도
태초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 마디가 뻣뻣하게 키보드만 두들기던 나는
어느새 넓은 평원에 위치한 풀밭에 앉아
열심히 토기를 빗는 원시인의 하루를 체험하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이탈리아 파엔차 예술인의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내가 무겁게 가지고 있던 고민은 어느새
지점토에 섞여 형체 없이 뭉개지고 있었다.
그 이후론 색이 섞인 지점토로 도자기 모양을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한다.
초보라고 겁에 질릴 필요도 없다.
클래스에 참여한 모두가 초보다.
그리고 모두가 수업 1시간 동안
도예가 부캐로 몰입할 뿐이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하면 어떡하냐고?
이 또한 걱정 마시라.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면 선생님이
이끌어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에스프레소 잔을 골랐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손잡이, 잔 받침, 잔의 몸통. 이렇게 3가지 부분을
만들어야 했다. 손으로 조물조물 모양을 잡다 보면
흐트러지고 금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물을 살짝 묻혀 손으로 슥슥 문지르다 보면 금이 있던 자리는
매끄러운 표면으로 새로 태어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은 그 부분만 물을 묻혀 굉장히 말랑하게 만든 뒤 새로운 점토를 덧대거나 덜어내며
다시 천천히 수정할 수 있다.
도예 수업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란 없다.
물 한 방울이면, 몇 번의 손길이면
어느새 점토는 고집 한번 부리지 않고
나의 실수를 눈감아준다.
나는 이때 당시 전환형 인턴이었다.
행여나 숨이라도 엇박으로 쉴까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메일 한 글자, 회의록 한 글자에도 내 미래가 두 갈래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는 합격과 불합격
그 두 글자가 가장 큰 대동맥이었다.
하지만 도자기 결을 따라 문지를수록 삐뚤고 금이 갔던내 도자기는 이내 번듯하게 서 있었다.
내 온기로 채우는 점토 사이의 공간이, 내 손가락 주름 하나하나 도자기 결로 물들어가는 그 과정이
나에겐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도자기의 속삭임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한 번의 결정으로
내 삶의 방향이 뒤틀릴까 두려웠던
나는 처음으로 일직선의 삶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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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취미를 통해
완벽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