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여우

Grenen*에서

by 미라



두 바다를 들었다 놓았다

그믈기 직전 달이

제 몸도 녹여내리던 기운으로

땅에 찍어낸 찰나의 그림자




초승달 모양의 사주(沙洲)는

두 바다가 뒤틀어 몸 섞는 곳

무아지경의 물의 희열을 더듬는

대륙의 말단의 촉수




오른쪽에선 촤촤-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는 늙은 바다

왼쪽에선 쉭쉭-

마지막 날숨의 갓태어난 바다




난무하는 교성의 한가운데를 지나

끝 가장 고요한 곳을 향해 걷는

화작(化作)의 경지

여우 한 마리




달빛에만 나투느라

온통 은빛이 된 털도

오늘은 그믈어 어둠 묻어

바다에 잠겼던 앞발까지 싯퍼렇다




흔한 삶에 달궈진

한낮의 모래 둔덕

바람이 데려다 키우고

출생신고서, 재직증명서, 이혼사유서,

졸업증명서, 법원출석명령서, 전세계약서 같은

소문이 넝마처럼 걸려있는 갈대밭 그늘에서

하품이나 하다가




인간을 넘어야 해탈을 하겠다며

이따금씩 그믐밤이면 찾아와

혼자 엎드린 인간들의

뒷꿈치를 깨물곤

학학학 웃는다








그믐여우

* Grenen: 덴마크의 최북단. 서로 다른 성질의 발트해와 북해가 만나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섞여드는 지점.


photo_2025-05-05_01-21-20.jpg Grenen, Denmark / 04.2025 / Mira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