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쌀.흙.

by 미라



세상 성마르고 유별나게 까시러운 것들마저도

텅빈 달에 담겼다가

다시 흠씬 차오르기를 열두 번 즈음이면

제 몸의 가장 여리고 얇아

반투명해서 하마터면 가여운 것들 먼저




퇴각명령에도 여전히 기고만장

수치심을 모르고 기웃거리는

지나간 계절의 댓바람 한가운데로

앞세워 재촉해 내보낸다




다행히 바람의 무게를 닮은 그것들은

독한 맘 안간힘 쓰고 매달려 있는 대신에

눈치는 지지리도 없는 굴뚝새가

경기하듯 급성으로 곁에서 울어제끼기만 해도

그 바람에 펄펄 퍼득이며 떨어져 내린다




내리는 모양새는 꼭

다시 흙이 되더라도

손톱 한 톨도 이 생에 남기지 않고 가겠노라

머리를 박박 깎은 누이의

아무도 보지 못한 속살의 살비듬을 닮았다




어질어질 나부끼는 마음 같은 그것들은

바람이 손목 잡아 데려다준 가장 낮은 곳에서는

시집 안가고 머리를 깎은 누이가 밉다면서

손사레를 치면서도

밥은 먹었는지 매번 묻는 어미의
소복한 한 덩이 쌀밥처럼 햇볕에 익어간다




꽃.쌀.흙.

Skiborg, Denmark 04.2025 / Mira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