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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임이란,

나이 든 엄마의 마음가짐, 손님 대하듯.

by 커피콩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내가 태어나면서 얻은 가족과 내가 선택한 가족으로 나뉜다."


누구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할까?


둘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할까?


부모의 은혜는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동시에 나의 책임이 내가 선택한 가족에게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나에게서 태어난 내 아이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라, 민족, 성별처럼,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의 책임은 아이에게 있다. 아이의 책임 안에 나는 없다.


내가 늙어가면서 아이에게 부담은 지우지 않도록, 짐이 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사로잡는다.





마흔,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낳는 선택을 했다.

선택이라 했지만, 사실 나는 나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다. 평범한 가족을 갖고 싶다는 욕망.


육아의 무게에 대한 내 생각과 남편의 생각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사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결혼과 육아의 책임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책임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서, 자유를 더 원했던 사람.


"아이 낳으면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못 한다. 알지?" 정말 매정했던 그 사람은,


아이를 선택하자마자 바로 위치선정에 들어갔다.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운이 좋았다. 그가 육아 고수가 되고, 내가 그의 하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해 줄 거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재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쏟아 부을 테지만, 부모로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들만큼은 선별해서 하지 않을 것이다.


결핍을 배우는 것도 너의 독립을 위한 것이니까, 너의 독립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할 것이다.





너도 크면, 네 선택으로 가족을 만들게 될테지.


그때가 오면 나는, 아니 우리는 너에게 바라는 것이 없을 거다. 그저 가끔 얼굴 보는 것 외에는.


우리는 그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책임'을 다할 뿐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네가 이미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받은 것이 많고, 나중에 더 받을 건 없다는 생각.


너는 그저 너의 선택들에 집중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집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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