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4. 도와주는 친구가 없었나요?

by 해파리

상담 치료를 하는 초기에 상담 선생님이 현의 학대에 대해 들으며 물은 것이 있었다. ‘반 친구들이 도와주지는 않았나요?’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에게 ‘정말 속 좋은 소리 하시네요!‘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지나갔다며 솔직히 말했다.

2학년 때도, 3학년 때도,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누군가 날 위해 나서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맞거나 우스운 꼴을 당하는 순간에 모두 멀뚱히 바라보거나 불편하게 쳐다보는 것으로 끝났다.

언제 한 번은 현이 기름걸레를 가지고 놀다 그걸 들어 내 머리에 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에는 아직 나무 마루 교실이 있었고 마루 코팅을 위한 기름 걸레가 있었다. 기름 걸레는 세척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더러웠고 오래된 기름에 쩔어 있었다. 내 머리는 기름 범벅에 썩은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나는 뭐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수돗가로 달려갔다. 현은 역겹게 웃으며 날 따라왔고 기름 때문에 머리를 감지도 못하고 겨우 먼지나 털어내는 날 보고 한참을 웃다가 혼자 돌아갔다. 예민한 촉각을 가져 평소 과자를 먹을 때 손에 생기는 기름기도 싫어하던 나였다. 머리가 산패되고 더러운 기름에 절여져 손도 쓸 수 없어지자 나는 수돗가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때 화장실에 가던 반 아이가 와서 조용히 물었다. ‘넌 왜 싫다는 말을 못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싫다고 아니라고 거부의 의사를 표현하면 난 마구 맞았다. 그럼에도 거부의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항상 엉망이 되도록 당해야 했다.

그 말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다가왔다. 현의 괴롭힘이 밝혀진 이후 엄마도 자주 내게 ‘싫다고 말 못하면 안 돼.’ 라고 말했다. 나는 은연 중에 내가 거부하지 않아 내게 오는 모든 폭력적인 것들을 바보처럼 수용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면화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나는 나 스스로 학대를 자초한 사람이며 많은 괴로움이 내 탓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며 아파했다.

어린 시기부터 난 인생은 혼자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자신만의 영역이 있는데 그건 어느 누구와도 섞일 수도 연결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날 도울 수는 없다. 내 괴로움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고 누군가 날 구원해줄 수도 내 짐을 조금이나마 경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뭐든지 나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쫓기게 되었다.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들키거나 알렸을 때, 찬의 일도 현의 일도 결국 문제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 헌의 일처럼 괴로움은 결국 시간밖에 해결해주지 않고 그래서 나는 참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날 도울 수 없고 내 괴로움을 해결해주지도 덜어주지도 않으니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그 깨달음은 내게 인생 전체를 허무하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무기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내 사지를 구속했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아이. 주변 또래들에게 관조당할 뿐인 아이. 그 아이는 뭐든지 혼자서 해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공허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청소년기 내내 삶이 허무하고 권태롭다는 감각에 시달렸고 공부도 학교 생활도 혼자 해내야 했다. 힘든 것에 대해 집에서 얘기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엄마 아빠에게 내 힘듦을 알리면 또 다른 고통이 다가올까 두려웠고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는 엄마 아빠의 불안과 염려를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게 버거워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희뿌연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배처럼 표류했다.

대학생이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에서 그들의 세계를 조금씩 전해 들으며 나는 매번 놀랐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기도 하고 대신 목소리를 내주기도 했다. 과한 폭력성은 학급 내에서 발현되지 못하게 견제되었고 만만해 보이는 인간들도 그러한 폭력의 표적이 되는 일이 적었다. 혹여 표적이 되더라도 내가 생각한 정도만큼이 아니었다.

가끔 학교 폭력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와 너무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비슷한 학대를 당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냐며 분노했다. 그러한 반응을 볼 때마다 나는 조금 당혹스러워지곤 하며, 어쩌면 내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이질감을 느꼈다. 나의 세계는 언제나 그러한 괴로움이 함께 했고 한 순간이나 한 시기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트루먼쇼 같은 스튜디오에 갇혀 위선적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처럼 느꼈다. 너희들의 세계에서는 이게 그렇게 생경한 일이 된다고?

‘보다 못한’ 누군가가 고발하고 나서주고, 피해 학생을 위해 교사가 ‘방임하지 않고‘ 노력하고, ’내 아이의 고통을 안타까워 하며 감싸는‘ 부모가 있었구나. 왜 내 세계의 사람들은 보기만 하고 내버려두고 당사자의 괴로움에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까. 내 세계가 거짓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라지 못한 어린 나는 내 내면 속에서 억울해하며 슬퍼하다 분노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내 세계의 비극에 대한 항의를 표현했다. 그 태도는 전부 무기력과 공허함, 권태감으로 이어졌다.

한 다큐 방송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비극적인 소식들과 함께 뉴스에도 많은 피해자들의 사례가 보도되었다. 그때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 엘리베이터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혼자 우는 피해자의 CCTV 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미 세상을 등진 그 아이의 작은 등을 보며 나는 신음했다. 그 아이의 사연은 너무 많은 부분에서 나와 비슷했다. 그 아이는 선했으며 부모님을 걱정했다. 나와 닮은 그 아이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들을 대하고 뒤에서 수많은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사연은 날 전율하게 했다. 그리고 그때 나보다 어렸던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 안에 홀로 남았을 때, 그제서야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고 막고 있던 속마음을 열어내고 우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죽기 전에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야 숨을 쉴 수 있던 그 아이에게서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서 나는 그 아이의 일을 이야기하며 울었다. 그리고 내 옆에 어린 내가 서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그 이후로도 나는 내 상처를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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