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5. 좋아해서 괴롭힌 거야

by 해파리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은 날 좋아했던 것 같다. 아직 성에 눈뜨기 전이었음에도 내게 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날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날 정도로 날 많이 좋아했을 것이다.

Adhd가 있고 통제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며 같은 성별의 아이를 좋아하지만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 이렇게 생각해보면 문제 행동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교육학 시간에 현이 떠올랐고 나는 현의 행동들이 단순히 현이 악하기 때문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현과 내가 함께 하던 시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조차 되지 못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은 자신이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매우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아 개념을 뒤흔드는 나라는 존재에게 그 불안감을 폭력적으로 배설했으며 다른 면에서는 나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가혹하게 집착했다.

현의 괴롭힘을 알린 날, 현은 내 옆자리에서 칠판 옆 자리로 유배되듯 옮겨갔다. 선생님과 같은 위치에서 학생들 모두를 지켜볼 수 있고 학생들도 칠판을 보며 현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현은 일주일 정도 그렇게 칠판 앞에 앉아 있었다. 가끔 수업 중에 고개를 선생님에게 고정한 채 눈으로 힐끔 현을 보면 현은 자주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현이 앉은 자리에서 일직선 상에 내가 있는 게 아니었지만 내가 살짝 볼 때마다 현은 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현의 표정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없었다. 현 스스로도 날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투명한 표정이었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다 손가락에 염증이 생겨 고생한 이유로 손톱 뜯기를 관두었다. 그날은 손톱을 뜯고 싶을 만큼 불안정한 날이었고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대신 살짝 주먹을 쥐고 손톱을 치아와 평행하게 세워 타악기를 연주하듯 긁는 것으로 대신했다. 입 앞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듯한 그 행동은 손톱에 타격감을 주었고 어느 정도 손톱을 물어 뜯는 것을 대체할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다 현을 몰래 보면 현은 어느새 나처럼 손을 들어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에이 아니겠지, 하고 넘겼지만 그 후로도 현은 내가 손톱을 이에 대고 부딪치면 똑같이 손을 들고 손톱과 이를 긁듯이 부딪쳤다. 그러고 있는 현은 정말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나를 따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때문에 불쾌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지불식 간에 현은 내게 몸과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나를 관찰하며 따라하고 있었다.

현의 폭력에는 단순한 학교 폭력이라고 하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것들이 함께 했다. 성적인 학대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괴롭히는 아이에게 요구하는 일이 잘 없는 정서적인 반응 요구 또한 함께 했다. 나는 현만을 위해 존재해야 했고 현의 배설구이자 현 삶의 목적이었고 그 모순 속에서 나는 으깨졌다.

그렇게 두고 보면 현의 어머니와 현이 우리집에 쳐들어와 빌 때 현이 울부짖듯 말한 것이 이해가 간다. ‘00이(나) 아니면 난 친구가 없단 말야!’ 다른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고 스포츠를 즐기고 게임을 하던 현이 나 없으면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코웃음이 났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현은 정말 나 이외에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현은 같은 이야기를 해도 내게 말할 때는 온전히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현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현을 이해하기 위해 친구로서 노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같은 adhd로서 현은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의 이질감에서 벗어나 내 앞에서는 같은 존재로서 느끼는 소속감과 소통감을 느꼈다. (adhd는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같은 adhd들과 비로소 소통하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작은 애정이 한 방울 섞였고, 날 좋아하는 것이 배덕한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날 원망하며 학대했다.

현은 내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도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하지는 않았다. 현에게서 내게 행해지는 방향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내가 현에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현은 항상 나보다 더 우월하고 주체적인 위계에 서있기를 바랐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이질적이라는 불안정함 속에서 일어난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 스스로는 언제든 날 이용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건 일방향적인 성적 착취처럼 이행되었다.

2차 성징 전에 현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은 일견 다행이라 본다(정말 다행하다면 그런 일이 아예 없었겠지만). 우리의 관계가 중학생 때까지 이어졌다면 나는 분명 구체적인 방식으로 성적 학대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2차 성징 이후 내가 성에 대해 눈뜨고 나서 나는 종종 현이 날 좋아한다고 말하는 상상을 했다.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방어 기제의 일환으로 학대 주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상상하며 트라우마를 축소하려 한다. 나 또한 그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곧 죽어도 현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현은 나를 원하지만 나는 현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당한 학대에 이유를 만들어줌으로써 내가 조금이나마 상처를 수용할 수 있게 하려는 무의식의 노력이자 학대 주체가 내게 악의를 가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통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건강한 방어기제라 할 수 없다. 차라리 현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했다면 괴로웠을지라도 조금 더 치료적인 접근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악행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상상을 하고 싶지 않은 연하고 섬세한 나 또한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기는 어려웠다. 어떤 무엇도 내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는 무기력해졌고 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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