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기력과 권태감
중 1 때 백일장에서 쓴 시가 있다. 시 제목은 권태.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왜 사냐고 끊임없이 반문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시의 마지막 행은 ‘오늘도 지는 권태의 하루‘로 끝난다. 그때 국어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시가 너무 어둡다며 걱정을 표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선생님은 시에 가감없이 드러나는 내 우울감을 느껴서 날 불렀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힘든 시기에 그럴 수는 있지만 살면서 내내 그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굉장히 놀랐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계속 죽고 싶었고 무언가 힘든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말이 입안에 굴러다녔다.
나는 모든 것이 소용 없다는 무기력감과 공허함 속에서 삶을 회의했다. 왜 살아야 하냐고 나 스스로 계속 묻는 것은 죽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의 발현이었다. 죽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계속 찾았다. 누군가 내게 죽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알려주길 바랐다. 나는 죽고 싶었고 반면에 죽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것은 결국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내 온몸과 마음은 죽고 싶다는 경보를 귀가 찢어지게 울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은 죽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내 내면의 깊은 곳, 본래의 나는 삶을 긍정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더이상 고통스러워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합리적으로 계산해 죽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결단을 내렸고 본래의 나는 그 결정을 유예해가며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정신과를 다니고 상담 치료를 하며 새로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정신과에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상담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도 내가 건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건강하게 이어나가고 싶었고 곧, 살고 싶었다. 아주 오래 지나서야 내면의 작은 내가 살고 싶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애틋해졌다. 그렇게나 오래 버텨왔구나. 살고 싶은데 괴로워하기 싫어서 죽고 싶었구나. ‘아프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서’ 역설적으로 죽고 싶었던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이 참 기특하고 장했다.
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너무 오래, 아주 어릴 때부터 항상 죽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미 습관이 되었는지 나는 자주 죽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이 듣지 않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한 때는 나 스스로에 대한 최면처럼 ‘죽고 싶지 않아’ 라고 바꿔 말하려 했으나 오히려 충동이 해소되지 않아 스트레스만 쌓였다.
뜨거운 것에 덴 피부는 열원에서 멀어지고도 따끔거리며 아프다. 열이 없이도 이미 손상된 조직은 변질되며 계속 통증을 일으킨다. 내 과거는 낫지 않은 화상과도 같다. 크게 데이고 조직이 손상된 뒤 계속 욱신 거리는 상처. 그 상처를 빨리 치료해야 변형도 최소화되고 흉도 덜 질 텐데 나는 그 상처가 보이지 않게 빨리 옷가지로 감싸 내게 상처가 없는 것처럼 굴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위로 더 많은 옷이 겹겹이 쌓였고 나는 나 자신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잊었으면서도 계속해서 통증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이제 와 상처를 돌아보려 하지만 너무 많이 변질된 조직은 큰 흉처럼 남았다. 이처럼 난 이유도 모른 채 계속 꺼지지 않는 알람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며 상담 치료를 통해서도 나아지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