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7. 그닥 다르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 똑같은 어른들

by 해파리

중학교 때 또한 학교 폭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항상 같은 양상이었다. 반 아이들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았으며 함께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진’ 행세를 하는 아이가 나를 콕 찍어 때리거나 숙제를 시키고 매점 간식을 사게 만들었고 유행하던 게임 머니를 벌어 자신에게 바치게 했다. 주말에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음악은 다른 의미로 내게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요병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싫어했다지만 나는 지옥문이 다시 열린다는 것처럼 들렸다.

1학년 때 한 번은 날 괴롭히던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이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괴롭힘 당한 그 아이를 일어서게 한 뒤 누가 괴롭혔는지 말하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미 누가 가해자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 아이가 직접 말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종례시간에 집에 갈 생각에 초조한 반 전체 아이들 앞에서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 아이는 몹시 난감해하며 입을 열지 못했고 선생님은 짜증을 내며 얼른 말하라 윽박질렀다. 밖에 주황빛으로 해가 비스듬히 걸릴 때까지 그 아이는 어쩔 줄 몰라했고 종래에는 집에 가지 못하고 잡혀 있는 신세인 반 아이들까지 그 아이에게 화를 내며 답답해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이미 집에 가고 나서도 그 아이는 입을 열지 못했고 갓 부화한 새처럼 불쌍하게 몸을 떨었다. 결국 담임 선생님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그 아이를 앉힌 뒤 종례를 끝냈다.

그것은 이미 공고하게 누구도 믿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내 결심을 더욱 굳게 해주었다.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은 너무 익숙한 것이었고 난 그 아이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뇌를 공유한 것처럼 느꼈다. 그 아이가 혼자 서서 떠는 동안 너무 안쓰러웠고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가혹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빠르게 삼켰다. 그리고 ‘저런 꼴’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더 필사적으로 괴롭힘 당하는 사실을 숨겼다.

의무감에 다니고 있던 교회에서도, 자기 전에도 수시로 기도했다. 날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매일 성경도 읽고 성가대도 하며 신에게 잘 보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존재가 날 괴롭히게 되며 내 기도는 무참히 짓밟혔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 나가는 일을 관두었다.

겨울은 내게 우울의 시기였다.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우울해졌다. 다음 학년 때 도대체 누가 날 괴롭히게 될까. 아무도 날 괴롭히지 않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매년 누군가 보이지 않게 날 괴롭혔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는 어두웠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계에는 괴로움이 함께 했다. 봄방학 때는 하루하루 미쳐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괴롭지는 않을 수도 있어, 하면서 내게 모르핀을 놓듯이 마취제를 놓으면 잠시 편해지다가도 마취에서 깨면 다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수세에 몰린 나는 마지막에는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구체적으로 죽는 방법을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라도 병원에 갔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조금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당시에는 정신과의 문턱이 높았고 그래서 내가 겪는 문제들이 치료해야 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 정도는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삶에 즐거운 일이 비교적 적어서 그런 것일 뿐,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스무살 무렵 처음 정신과를 갔을 때 어릴 때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소아 우울증이었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선생님이 동의했다. 어린 나의 등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린 나의 괴로움을 물어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러면 지금 덜 아파해도 되지 않을까. 무의미한 메아리만 내 안에서 회한과 함께 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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