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9. 내면아이의 눈물

by 해파리

첫 상담 치료와 1년 뒤 다른 곳에서의 두 번째 상담 치료 때 모두 내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했지만 그런 내 의식적 태도와 달리 무의식에서는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차단해오던 감정을 내보이기 두려워했다. 감정이 격하게 올라오는 순간은 항상 괴로움뿐이었기 때문에 살고자 했던 방어적 처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에 무거운 족쇄가 되어 내 발목을 잡았다.

첫 상담 치료 당시 슬픔과 고통이 가슴 속에 밀도가 낮은 액체처럼 차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눌러오던 괴로움일 거라 생각하고 어느 날은 아예 작정하고 울어보기로 했다. 감정이 자연스레 차올라 눈물로 이어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나는 상담 치료 후 감정적으로 약간 축축해졌을 때 일부러 슬픈 영상을 보며 울기로 했다.

마침 찾은 영상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식이 vr로 엄마를 만나는 영상이었다. 현재 내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울적한 마음으로 영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며 눈물이 고였고 눈물이 흐르는 순간 나는 일부러 ‘엄마, 힘들어’ 라고 말하며 내 마음의 문을 개방하려고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처음 ‘엄마, 힘들어’ 라고 말한 건 분명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물꼬를 틀자마자 눈물이 쏟아졌고 나는 방언이 터진 신도처럼 말과 울음을 마구 쏟아냈다. 알지 못하는 영이 씌인 영매처럼 내 몸은 울음을 토해내는 도구가 되었고 나는 내 자아를 잃을 정도로 오열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엄마, 미안해’였다. 엄마, 미안해. 내가 나약해서 미안해. 내가 나약해서 그런 일을 당해서 미안해. 내가 얕보여서 그런 일을 당해서 미안해. 내가 나약해서 엄마가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전공 시간에 부모의 갈등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죄의식을 가지는 아동들에 대해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갈라서면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내면화한다. 그런데 내가 그랬을 줄은 몰랐다. 어린 나는 엄마가 가해자와 그의 어미 앞에서 울며 성토하던 모습을 보고 자기 탓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아빠가 날 쫓아낼 때의 표정을 선명하게 기억하며 자기 때문에 아빠가 그렇게 되었다고 자책했고 어린 동생이 집에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 두려워하던 것을 자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자책했다. 10살의 내가 20년은 더 지나 30대의 내 몸에 현신해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한바탕 울고 나서 조금 진정되고 나니 머리가 띵하고 먹먹했다. 물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물을 한껏 먹고 귀에 물이 들어차 제정신이 아닌 기분이었다. 다음 날 상담 선생님에게 가서 말하니 우는 것 또한 온몸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인생에서 목 놓아 울었던 게 신생아 이후 거의 처음이었으니 오랜 변비로 고생하던 사람이 배설 후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울고 나면 시원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진이 빠지고 답답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무언가 걷히는 느낌과 함께 마음에 잔잔한 파도가 선선하게 치는 느낌이 들었다. 해소하는 순간은 괴로웠지만 해소하고 난 뒤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치유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에너지를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그 작은 집에 머물러 있던 ‘내면 아이’에게 접근해 어린 나이자 내면 아이인 그 아이를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의 무기력은 10살의 내가 마리오네트처럼 지금의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사지에 실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그 어린 손으로 나를 조종하는 것임을 알았고 해소 이후 거기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첫 상담이 10회기로 끝나고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나는 상담을 잠시 유예했다. 이후에도 무기력과 자살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원금을 받아 집 근처 다른 곳에서 상담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내 내면을 새로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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