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21. 첫 자해

by 해파리

첫 자해는 스물 둘 무렵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에 조울증으로 진단받고 처방받은 약이 초기 이후 큰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나는 내내 우울해하며 우울감의 바다 속에 빠져 지냈다(adhd와 우울증을 함께 동반한 경우 조울증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치료 효과가 지지부진하면서 나는 만성적인 무기력과 우울함에 허덕였고 도저히 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에 힘들어했다.

해가 뜨면 자고 해가 지면 일어나는 삶이 지속되었고 대학에 복학하지 않은 채로 히키코모리처럼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나 스스로는 히키코모리 같다고 묘사하지만 그때도 돈을 버느라 과외를 알아보고 꾸역꾸역 밖에서 일을 했다. 상담 선생님에 의하면 그때도 뭐라도 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실제로는 휴식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망가진 생활 패턴과 매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떼우는 삶은 내 정신 건강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난 술이 매우 약했고 맥주 한 두 캔이 최대치였다. 술을 더 마실 수 있는 몸이었다면 몸에서부터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어느 날 모두가 잠든 밤, 혼자 방에서 시간을 죽이느라 고군분투하는 중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머리끝까지 괴로움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면도기를 꺼내와 부쉈다. 부서진 면도기에서 면도날이 분리되었고 지체 없이 손목을 그었다. 통증이 불쾌하긴 했지만 피가 맺히는 것을 보며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피가 방울지며 흐르는 것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손목을 긋는 것은 자살 시도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을 알고 했다. 죽지 않을 것을 아는 채로 죽음을 흉내내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자해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자학적인 행동을 하면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자신의 몸을 엉망으로 만드는 폭식이나 무분별한 성관계, 물질 중독에 빠지는 등의 것 모두 자해의 일환이다. 정해진 업무나 일과를 행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 또한 게으름이 아니라 자해의 일종이다. 물리적인 자해는 그것들보다 더 명확하게 겉으로 드러나고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앞서 말한 종류의 것들보다는 차라리 나아보일 수 있지만 자살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나는 자살 사고를 하면서도 자살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내 자아의 긍정적인 부분이 죽지 않고 싶다고 버틴 덕이었다. 대신 나는 이후로 종종 손목을 긋곤 했다. 한 번 시도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매우 쉽게 할 수 있었다. 일회용 면도기는 구하기 쉬웠고 갑자기 없어져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는 한 번에 여러번 손목을 그어 흉이 남았고 다른 일로 한의원에 가서 손목에 침을 맞다가 의사 선생님의 미간이 찌푸려진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자해를 하고 동생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동생은 매우 놀랐고 과거에 날 괴롭혔던 사람들 욕을 하며 화를 내고 안타까워했다. 그때 동생에게 보여준 이유는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고픈 심정과 함께, 나는 망가졌으니 네가 나 대신 부모님에게 멀쩡한 자식 노릇을 해달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동생은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종종 내 상태를 살피는 듯했고 군대에 가서도 민간인인 내가 잘 지내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생각보다 사람의 몸은 매우 튼튼하다. 지금은 흉조차 남지 않아서 손목을 가릴 필요가 없다. 자해를 하며 해소한 스트레스는 마치 전당포마냥 이자를 붙여서 더 크게 되돌아온다. 나중에 몸으로 깨닫고 그 이후로는 자해를 하지 않는다. 지금도 자살 사고를 하지만 자해를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눈덩이처럼 괴로움이 이자를 붙여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 고민을 토로하던 한 친구가 어느 날 자해를 했다고 밝혔다. 나는 바보 같이 왜 그랬냐고 하면서도 내가 자해할 때의 심정이 떠올라 시원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더 불편해졌을 거라고 하자 친구는 맞다며 자신이 한심해졌다고 했다. 경험자 입장이다 보니 그 친구를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말할 수 있었다. 병원을 알아보고 친구가 다닐 수 있도록 종용했고 이후 친구는 치료를 받고 상황이 나아지며 다시 건강해졌다. 자해할 필요가 없어진 친구의 상황과 건강이 다행스러웠다.

자해를 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만약 그때 부모님이 날 걱정하며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아마 더 크게 엇나갔을 것이다. 부모님의 방식으로 내게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또 날 표적으로 부모님의 불안과 염려를 해소하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부모님이 조용히 날 불러 ‘많이 힘들지?‘라고 했다면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눈물을 흘리며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부모님이었다면 내 과거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부모님은 크게 다르지 않고 이제 와 상담 치료를 통해 찾은 내 내면아이가 아물지 않은 상처에 아파하면서도 나이 든 현실의 부모님에게 의지하거나 어리광을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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