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22. 치료 후에 떠오른 이름, 현

by 해파리

서른이 넘어서야 나는 adhd 검사를 받고 adhd임을 확실히 진단받을 수 있었다. 대학교 때 전공책에서 adhd의 특징을 보며 ‘어렸을 때의 나는 분명 adhd였을 거야’ 라고 확신했지만 adhd가 보통 유소년기의 전유물로 여겨져 정작 내가 지금 adhd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검사받을 생각도 못했다. 정신과도 한 번 옮기고 내게 맞는 치료를 다양하게 모색하며 10년쯤 다녔지만 일반 정신과에서는 adhd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기서도 내가 adhd일 거라 의심하지 못했다. Adhd일 것 같아서 소아정신과에 예약해 진단을 받은 뒤 원래 다니던 정신과에 가 진단을 받았음을 말하자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랄 정도였다. (adhd는 성인, 소아 통틀어 소아정신과에서 주로 담당한다.)

진단 후 약물 치료를 시작했고 얼마 뒤 내 몸에 맞는 약물 최소 농도를 찾았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얕은 물에 면직물이 담겨 천천히 젖듯이 내 몸에 양기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약이 효과가 있다는 깨달음은 갑작스레 찾아오지 않았다. 약을 먹고 몇 시간 뒤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굉장히 ‘정상적인‘ 상태임을 깨닫고 나서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차분함과 잔잔함, 묵은 빨래 같이 퀘퀘했던 내 영육이 보송보송한 느낌으로 부풀어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그 시기부터 우울증 치료에 굉장히 큰 차도가 있었다. Adhd는 보통 다른 정신질환을 동반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동반되었다. Adhd 치료 후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굉장히 좋아졌다. 앞으로의 장래를 생각하며 내 인생에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기까지 할 수 있었다.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현이 생각이 났다. 너도 adhd였겠다. 나 이제 좀 알겠어. 넌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잠잠한 내면의 수면 아래 그러한 생각들이 고요히 지나갔다. 그때는 그냥 현이 같은 adhd니까 생각났나보다 했지만 나중에 와 생각해보니 내 내면에 뒤틀려있는 또아리의 중심에 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괴롭힘들이 날 고통스럽게 했고 내 내면을 병들게 했지만 가장 격렬하게 꼬인 매듭은 현에 의한 것이었다. 내가 힘을 되찾고 소위 말하는 ‘제정신‘이 되자 현이 먼저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만약 내가 직장인이었고 꾸준히 돈을 버는 사회인이었다면 나는 바로 흥신소에 의뢰해 현의 현재를 추적했을 것이다. 마침 나는 프리랜서이자 백수로 밥값이나 겨우 버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돈이 없었다. 어차피 현을 찾았다 해도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이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부작용만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현을 찾는 대신 상담 치료를 선택했고 내 기억 속의 현을 찾았다.

기억 속의 현을 찾은 것만으로는 사실 충분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내가 납득할 만한 위로와 징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10살에서 자라지 못한 채 손상된 마음을 끌어안고 내면아이로 남아버렸다. 하지만 지금 현을 찾으면 분명 전혀 다른 현을 봐야 하고 내면아이는 또다른 상처를 받을 것이고 내 괴로움은 덜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현을 찾아낼 생각이다. 오랜만에 마음의 문을 열고 마주한 내 내면아이는 차가운 표정으로 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내면 아이의 마음 속 이야기가 느껴진다. 언젠가 현을 반드시 찾아 눈앞에 마주할 거라고. 현에게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지는 않다. 사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뭘 하고 싶길래 굳이 수고롭게 현을 찾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을 찾아서 목도하는 것이 현재 내가 가장 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현을 눈앞에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때부터 내 내면의 또아리가 움직이며 그제서야 원하는 바를 말해올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내 내면 아이의 숙주가 되어 현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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