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3.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by 해파리

내가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이제 10살인 아이가 감추려 해도 티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용돈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군것질도 안 하고 물욕도 없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볼 때마다 천 원씩 달라고 했고 외출도 안 하던 아이가 학교 끝나고 부리나케 나가 1시간은 있다 돌아와서 어딜 다녀왔냐고 하면 대충 얼버무리거나 티나는 거짓말로 둘러대고.

언젠가 현이 날 장난감처럼 부려먹다가 자기가 여자애들에게 장난칠 때 써먹은 적이 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 현은 내가 한 여자 아이를 못가게 막도록 민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내게 밀려 벽에 부딪쳤고 나도 살짝 엎어졌다. 나는 얼른 뛰어가 자리에 앉았지만 그 여자애는 현과 나의 방해에 조금 늦게 자리에 갔다. 늦게 자리에 앉은 아이들을 담임 선생님이 불러 세웠고 종이 쳤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놀고 있었다는 이유로 혼을 냈다. 그 여자애는 나와 현 때문이라고 억울해했지만 선생님은 핑계를 댄다며 더 혼을 냈다. 그날 그 여자애는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집 엄마는 나의 엄마에게 연락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불편함을 내비치며 내가 현의 하수인처럼 지내는 것을 전했다. 그 사실을 나는 아주 나중에 알았다. 엄마는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았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학기 중간 중간 나는 몇 번이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무 괴롭다고, 현이 날 이렇게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목구멍에 밸브라도 잠긴 것처럼 엄마를 부르는 것만으로 나는 힘에 겨워 포기했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정말 말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 엄마를 불렀다. 그러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엄마를 부르는 것만 반복하다가 엄마의 짜증에 말을 삼켰다. 내가 조금 이상한 태도였다는 걸 살필 만큼 엄마에게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현의 이야기가 다 밝혀지고 나서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내가 만만해서 걔가 그런 거라고. 내가 나약하게 굴면 만만하게 보고 누가 그러는 거라고. 그래서 만만해 보이면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그건 뒤집어 말하면 내가 그런 행동을 촉구하는 특성이 있다는 식의 진술이 된다. 내가 어떠하기에 누군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어떠한 사람이든 그런 행동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뒤에 상담 치료를 하면서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날 걱정하며 내가 또 괴롭힘을 당할까봐 염려했고 그래서 내게 ‘만만해 보이지 말라’고 그 이후에도 자주 얘기했다. 그 말은 내게 내면화되었고 나는 만만해서 당한, 학교 폭력에 까닭을 제공한 당사자가 되었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현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던 걸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언제 말하는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말의 행간을 살피고 내면의 무의식과 심리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접근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 말을 하게 된 맥락이나 연유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먼저 물어보거나 나서주지 않은 걸까. 내가 버려진 것처럼 방임된 느낌에 괴롭기도 했지만 내가 비참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관조하기만 했다는 것처럼 들려 고통스러웠다. 아, 엄마는 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구나. 그건 엄마에 대한 배신감으로 다가왔고 엄마와의 신뢰가 끊어지는 일이었다.

현의 어머니도 지금 생각해보면 현과 내 관계가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전화로 현에게 날 괴롭히지 말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현의 어머니는 현을 데리고 무언가 밝혀지기 전까지 기다리던 것처럼 득달같이 들이닥쳤다. 그때 나는 현이 나를 어떤 식으로 괴롭혔고 내가 얼마나, 어떻게 괴로웠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현의 괴롭힘을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니 현의 어머니는 현의 불안정함과 폭력성을 일찍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더욱 공부나 사회 규범에 대해 현에게 엄격하고 통제적으로 굴었을 것 같다. 어떻게든 그 불안정한 내면을 가르쳐서라도 고정해 가둬두려는 나름의 시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의 폭력성이 나에게 배출되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만 10세였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그 나이 아이가 가릴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현의 어머니는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 불완전한 결함이 있음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 불완전함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실로 드러나기 전까지 아니길 바라며 흐리멍텅한 눈으로 애써 무시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전화로 울려퍼진 엄마의 일갈에 올게 왔다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 정리도 못하고 후다닥 현과 함께 달려온 것이다. 지금 와서는 현의 어머니가 현을 바로잡기 위해 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내 고통을 모른 척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망하기를 피할 수 없다.

내가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식의 방식은 그 당시 부모들이 할 법한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아직도 거기서 얻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방향을 잃은 배처럼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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