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현-6
학기 말, 초여름에 현은 나와 수영장에 가고 싶어했다. 나는 물을 무서워했고 남 앞에서 옷 벗는 게 싫어서 공중 목욕탕도 가기 싫어했다. 탈의실에서 현 앞에서 발가벗어야 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현의 반응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현 앞에서 발가벗어 버리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 같았다. 현은 주말에 같이 동네 수영장에 가자고 했고 나는 싫다고 말하다 몇 대 맞고는 어물어물 그러겠다고 해버렸다.
정말 너무 싫었기 때문에 주말 아침에 나는 현의 집에 전화해 수영장에 못 가겠다고 했다. 현은 매우 실망한 목소리로 얌전히 알겠다고 했다. 현은 가족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게 바로 성을 내지 못했다. 나는 겨우 해방됐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고 그 날 하루를 편히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현은 아침에 학교에서 날 보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엎드려 있으라고 명했다. 당황한 나는 왜냐고 물었지만 현은 괴물같은 얼굴을 하고 날카롭게 당장 화장실 가서 엎드려 뻗치라고 화냈다. 나는 화장실에 갔고 화장실은 매우 더러웠다. 화장실에는 같은 학년 다른 반 아이 두 명이 있었는데 내가 바닥에 엎드리자 매우 당황하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 아이들의 시선이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는 현이 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곧 교실로 돌아갔고 현이 찾아왔다. 아침 시간 조회가 시작되기 전이라 화장실에는 나와 현만 있었다. 복도는 조용했고 다행히 나는 다른 아이들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 현에게 비참한 꼴을 당할 수 있었다.
현은 오자마자 날라 차듯이 내 엉덩이를 걷어 찼고 난 쓰러졌다. 현이 엎드리라고 소리쳐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쳤다. 현은 내 엉덩이와 배를 마구 걷어차며 자기가 가족들 앞에서 얼마나 우스운 꼴이었는지 아냐며 화를 냈다. 수영장에 가지 않겠다고 한 게 가족들 앞에서 부끄러울 일인가 싶었지만 지금 보면 현은 가족들 앞에서 내게 거절당한 것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현이 항상 두려워하는 것, 내가 자신을 거부하고 떠나가는 것을 가족들 앞에서 겪으며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졌고 그 불안은 큰 에너지를 가지고 분노로 바뀌어 내게 폭력적으로 배설되었다.
이번주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이를 짓씹으며 현은 내게 통보했다. 나는 겨우 일어나 손을 털고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침부터 엉망진창으로 화장실 바닥에 엎어져 맞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학교 생활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나는 항상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텅빈 동공으로 자주 멍하게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현은 수영장에 가서 어떻게 놀지 신나게 지지배배거리며 떠들었다. 수영장에서 놀고 난 뒤 나와서 육개장 사발면을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라고 말하는 현의 표정은 정말 순수하게 기대감에 부푼 초등학생의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어떻게든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의 말을 듣고 넘겼다.
다음 날 아침, 가슴 아래부터 목구멍까지 무언가 넘쳐흘러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빠는 안방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생은 이제 1학년으로 거실에서 엄마가 학교 갈 준비를 돕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혼자 침대에 앉아 있다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침대에 앉은 날 보았고 나는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왜, 누가 괴롭혀?’ 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현이 괴롭히는 거지?’ 라고 했다. 나는 소리없이 숨죽여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기다렸던 말을 들은 것처럼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현의 집에 전화했고 현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게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