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12. 현-7

by 해파리

현은 집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영장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가족이 다같이 모여 아침을 먹는 동안 들어 내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내가 엄마에게 처음 이야기한 날 아침, 엄마가 현의 집에 전화를 한 것도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엄마는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현에게 날 괴롭히면 가만 두지 않을 줄 알라며 그 한 마디를 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고 별 일 없었던 것처럼 동생의 학교 갈 준비를 도왔다. 나는 엄마에게 알렸다는 것만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벨이 울렸고 엄마가 문을 열자 현과 현의 어머니가 들이닥쳤다. 현의 어머니는 이미 거의 우는 얼굴로 현을 데리고 왔다. 들어오세요, 네네 등의 당연한 말도 없이 현의 어머니는 먼저 사과를 했고 엄마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의 어머니와 현은 신발장에서 신도 벗지 못한 채 거의 꿇어 앉듯이 하며 엄마에게 사과했다.

나는 매우 놀랐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현의 어머니와 현이 우리집에 큰소리를 내며 들어오면서 나는 내 집이, 내 공간과 내 영역이 침해당했다고 느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거친 에너지로 집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내가 침대에 앉아 긴장한 상태로 굳은 채 있는 동안 엄마는 무어라 항의하듯 이야기했고 현의 어머니는 거의 무릎을 꿇은 채 사과했다. 현의 어머니의 자세에 맞춰 엄마도 조금씩 바닥에 엎어지듯 앉았고 엄마는 큰 소리로 울었다. 현의 어머니도 현도 함께 울며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안방으로 도망갔다. 안방에서는 아빠가 출근 준비를 하다 그대로 서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안방에 들어가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아빠는 굳은 얼굴로 내게 ‘나가!’라며 소리쳤다. 아빠 입장에서도 당혹스럽고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고 지금 나가서 거들어야 할지, 엄마를 달래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10살의 어린 아이였고 피해 당사자였으며 아빠의 자식이었다. 거기서 이해의 주체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는, 되어서도 안 되는 아이였다. 나는 그렇게 안방에서 쫓겨나듯 나와 다시 내 침대에 가서 앉았다.

이십 몇 평짜리 집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지척에서 이루어졌고 나는 아수라장을 피해갈 수 없이 지나쳐야 했다. 아직 어린 동생 앞에서 나로 인해 엄마가 울고 사달이 난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현의 어머니는 엄마와 함께 울며 사과인지 모를 말을 했고 현은 그 옆에서 ‘나는 00이(나) 아니면 친구가 없단 말야!’라고 외치며 울었다. 침대에 앉은 나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이 났다. 현은 친구가 없지 않았다. 오히려 체육시간에 애들을 몰고 다니는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날 친구로 여겼다면 왜 그렇게 대했는지에 대해 화가 났다.

한바탕 소란이 잠잠해지고 엄마는 됐으니까 나가라고 현의 어머니와 현에게 말했다. 현의 어머니는 현과 내게 다가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 앉은 채 침대에 앉은 내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현이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일어난 직후의 옷차림으로 속옷만 입고 있었다. 남 앞에 이런 꼴로 있기 싫었던 나는 치가 떨릴 정도로 내 앞에 그들이 있는 것이 싫었다. 옷조차 입혀주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현의 어머니는 내 손을 잡았고 내 허벅지 맨살과 사타구니에 현의 어머니 팔뚝이 닿았다. 현의 어머니는 내게 미안하다 했고 나는 네, 네 하며 대충 대답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 다 꺼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현 앞에서 다시 발가벗은 상태로 내 영역의 방벽이 모두 무너져 버린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현의 어머니와 현이 돌아가고 나서 다시 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돌아갔다. 나는 또 학교에 가야 했고 도살장에 끌려가듯 학교에 갔다. 그때 현은 내 짝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현과 마주해야 했다. 현은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다. 특별히 괴롭히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현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구나 했다. 현은 정말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1교시 시작 전 엄마가 아빠와 함께 같이 찾아왔다. 담임 선생님은 매우 놀라 엄마아빠를 맞이했다. 그러고 1시간 내내 교실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가 찾아온 것에 놀랐다. 아빠는 시장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고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가게를 열러 나갔다. 가게 문을 정해진 시간에 열지 않으면 수많은 거래를 그르칠 수 있어서 단 한 번도 아침 출근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 아빠가 학교에 있다는 게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1시간 남짓이 지나 2교시까지 파행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온 담임 선생님은 우리 모두 눈을 감게 시킨 뒤 오늘 누군가를 매우 폭력적으로 괴롭히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들었다며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힌 것 같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모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있었다. 5분 정도 지나고 현이 손을 드는 것이 옆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손을 내리라 한 뒤 눈을 뜨게 했다. 나중에 교육을 전공할 때도 여기에 무슨 교육적 함의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3교시가 끝난 뒤 선생님은 날 불렀다. 초등학교 특성상 선생님의 교탁이 각 반에 있었고 선생님들은 담임하는 반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선생님의 책상 앞으로부터 빽빽하게 책상이 줄지어 있었고 선생님 바로 앞에 얌전한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쉬는 시간에 그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며 놀고 있었고 선생님에게 불려 간 나는 그 아이들의 코앞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선생님은 완고한 목소리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이야기했고 나는 눈물을 참는 데 온힘을 써야 했다. 선생님 말의 내용을 들을 여력이 없었다. 선생님은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서있었으며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마치 잘못을 한 아이를 불러 혼내는 구도와 흡사했다. 바로 옆에 반 아이들이 앉아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듯한 눈이 아직 기억난다. 나는 결국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선생님은 무어라 더 이야기하다가 ‘날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말을 마무리했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 날 일을 정리하면 나는 내가 괴롭힘 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결국 나 스스로 인정하고 비참함에 괴로워하면서도 엄마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 영역은 현과 현의 어머니에 의해 침범당해 완전히 부서져버렸고 나는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빠는 나를 쫓아냈고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속옷차림으로 수치스러워해야 했고 학교에 끌려갔으며 벌받는 아이처럼 선생님 앞에 서 친구들의 눈총을 받으며 울었다. 놀라울 정도로 피해 당사자 아이에게 어느 누구도 ‘힘들었지?’ 라며 그동안의 괴로움을 알아봐주는 말 따위 해주지 않았다. 아주 짧은 말로도 그 아이를 달래주는 어른이 없었다. 모두 그 아이에게 굳은 얼굴로 무섭게 말했고 그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한다며 피해자인 그 아이에게 책임 소재가 있음을 상기했다. 그리고 모두 눈물이 없는 그 아이를 마지막에는 한 번씩 울리고 말을 끝냈다.

현은 즉각 칠판 옆에 마련된 문제 아이를 분리하는 자리로 옮겨졌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났다. 현이 현의 집에서 어떻게 혼났는지는 나로서 알 도리가 없다. 현은 그냥 혼자 따로 앉게 되었고 그 다음날부터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현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법한 응분의 대가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고 지나쳤다.

성인이 된 뒤 여러가지 폭력이나 학대에 대해 논할 때 피해자를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대학 때 학교 폭력과 관련된 토론을 할 때 피해자를 위해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가해자가 충분히 처벌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성인이 된 나는 아쉬웠다. 내가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어린 나는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내 고통과 상처가 조금은 더 아물 수 있었을까. 이미 지나간 거 어떡하겠어, 하며 나는 무심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릴 적부터 학습되어 내면화된 내 체념과 무기력의 일환이라는 것을 더 나중에 상담 치료를 하며 알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1화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