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9. 현-4

by 해파리

현은 머리가 똑똑한 편이었고 2학년 때부터 나와 현은 곧잘 비교가 되곤 했다. 같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같은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했고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같은 과목의 같은 부분을 얼마나 하는지를 비교 당하기 쉬웠다.

나는 머리가 좋았지만 adhd였기 때문에 흥미가 없는 일에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2학년 때 교육과정 상 구구단을 외워야 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숫자는 마구 꼬여 기어다녔고 외우는 일에 영 소질이 없던 나에게 구구단은 정말 피로한 일이었다. 현의 어머니는 공부에 대해선 현을 꽤 엄하게 지도하는 편이었고 현은 어머니가 정한 날까지 구구단을 단계적으로 외웠다. 나의 엄마는 공부로 날 그렇게까지 압박하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현이나 다른 애들에 비해 구구단을 느리게 외운다는 소식을 들으면 조금 걱정했다가도 곧 잊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담임 선생님이 정한 기간 안에 구구단을 외운 척이나 겨우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준 숙제 유인물은 대부분 칸이 크게 뚫려 있었는데 나는 그 칸을 다 채우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단답형으로 단어를 쓰거나 단순하게 키워드만 씀으로써 답을 적었는데 현은 그 칸 안이 빼곡하게 찰 정도로 성실하게 답을 적었다. 서술형 학습지가 많았던 초등학교 시절 내 숙제와 현의 숙제는 종종 비교되었다. 다행히 엄마는 몇 번 현처럼 해보라고 얘기하다가 그만두었다. 엄마도 현의 어머니처럼 매일 자식을 붙잡고 공부를 감시하는 것은 귀찮았던 것이다.

현의 어머니는 현에게 과도하게 강압적으로 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만 현에게 통제적인 부분이 많았다. 현의 아버지는 일이 바빠 내가 그렇게 현과 오래 함께 있었음에도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현의 어머니가 대부분의 경우 현과 현의 동생을 양육했다. 그때는 단순히 공부 철저히 시키는 엄마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현의 어머니는 현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이 엇나가지 않도록 기준에 맞추려고 꽤 강하게 통제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중에 현이 날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한바탕 사달이 난 뒤 현의 어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찾아와 단 둘이 이야기했을 때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평소 현이 공부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두도록 엄하게 대하고 사회 규범에 맞게 행동하도록 지도한 게 있었는데 그게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돼서 그랬던 것 같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자신의 아이가 원래 나쁜 것은 아닌데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 어머니도 결국 자기 아이를 두둔하기 바빴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면서도 자식의 죄를 자신의 죄로 치환하고자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현과 나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된 뒤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우리는 각각 이사를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은 내가 이사 간 아파트 단지 바로 옆, 심지어 내 고등학교와 집 사이에 있는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 바로 앞이 굉장히 큰 학원가라 근처 지역에서도 올 정도였고 그렇기 때문에 학원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안 마주쳤을 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 나는 현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알아보고 싶지 않거나. 하지만 현은 나를 알아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괴롭힘이 밝혀진 순간 이후로 현은 나에게 아는 척할 수 없다는 저주와 같은 형벌에 처했고 내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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