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현-3
소풍을 가거나 체험학습으로 학교를 나갈 일이 있으면 현은 나와 짝을 지어 가려 했다. 무작위로 짝이 지어지길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소풍이나 체험학습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 담임 선생님은 당연하지만 조를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었고 나는 자연스레 현과 함께 다니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의 모습 중 하나는 현이 내게 절친함을 확인하려 했다는 점이다. 어느 날 반에서 가장 친한,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1, 2, 3 위로 대는 것이 유행처럼 시작됐고 아이들은 서로서로 친한 친구들끼리 호명하며 즐거워했다. 현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반에서 친한 편인 다른 친구를 말했다. 현은 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기분이 몹시 불쾌하다는 티를 내며 그 날 하루종일 내 신경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학교가 끝날 무렵 현은 다시 내게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지쳐서 현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현은 얼굴을 활짝 펴고 밝게 웃으며 ‘그렇지?’하고 우악스럽게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나는 어설픈 웃음과 함께 그렇다고 대답하며 속으로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몰래 속삭였다.
현은 어딜 가도 나와 함께 하려고 했다. 집에 갈 때 함께 가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운좋게 현과 다른 모둠이 되었을 때 나는 현과 따로 갈 방법을 강구했다. 그때 청소당번을 정하는 방법으로 종례시간 가장 더러운 모둠을 선정하는 방식을 썼다. 검사하기 전 짧은 시간이 주어졌고 그때 빠르게 주변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주워 모두 청소당번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쓰레기가 발견되거나 더러운 부분이 나타나면 그 모둠이 청소당번이 되었다. 나는 쓰레기를 줍는 척하다 선생님이 검사하기 직전에 몰래 바닥에 미리 준비한 쓰레기를 버렸다. 그러면 안타깝게도(다행스럽게도) 내 모둠이 청소당번이 되었고 현은 아쉬워하며 먼저 집에 갔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청소했고 현이 없는 교실에서는 청소를 하더라도 신이 났다. 청소당번이 되면 단순히 집에 같이 가지 않는 것을 넘어서 현의 학원에 바래다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를 쓰고 청소당번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을 피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고 자주 쓸 수 있는 방법은 되지 못했다.
현은 나도 현과 함께 학원에 다니길 바랐던 것 같다. 추측으로 하는 이유는 현 스스로도 학원에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학원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님들이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에 현이 내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을 학원에 바래다주면서 학원 강사들이 내 얼굴을 익혔고 종종 ‘너도 다니렴’ 이라고 말할 때마다 소름끼쳐 하며 얼른 학원을 빠져나왔다.
몇 번을 제외하고 항상 같은 모둠에 현과 앉아야 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현이 빠르게 내 자리를 자기 모둠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자리를 바꾸는 날 나는 현의 모둠에 있는 다른 아이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고 그런 식으로 현은 나를 자기 모둠에 앉혔다. 자리를 바꾸자고 권하는 순간 마음 속에서는 양가적인 바람이 있었다. 이대로 거절당해서 현과 같은 모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얼른 성공해 현의 바람을 실현하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 종종 첫 시도는 거절당했고 나는 연속적으로 실패해 결국 현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되길 바랐지만 현은 귀신같이 째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나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라도 현의 모둠에 앉아야 했다. 나는 가장 비굴한 자세로 아이들에게 간청했고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보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현과 같은 모둠이 되었고 나는 내 의사로 현의 옆에 앉으려 든 것 같아 내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다 자초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나를 무엇보다 더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 나를 위험에 밀어넣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나 자신이 싫었으며 그런 꼴로 있는 내가 비참했고 한심했다. 나는 끝없는 자기혐오의 나락 속에서 현의 마리오네트처럼 굴었다.
현과 함께 있으면 나는 문제아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현은 수업시간 내내 내게 말을 걸거나 장난을 쳤고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때리거나 침을 뱉거나 가위로 내 옷을 상하게 하며 날 몰아세웠다. 현을 거부하지 못하고 반응하게 되면 보통 나는 현과 함께 떠드는 말썽쟁이로 여겨졌고 현과 나는 함께 교실 뒤로 나가 엎드리는 벌을 받아야 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하는 날 담임 선생님은 2시간을 통으로 그림 그리는 시간으로 해두었다. 모두 조용히 자신의 그림에 집중했고 나도 내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이 날 차분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현은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재미 없었는지 나를 찌르며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을 하자고 했다. 나는 지금 조용해서 안 될 것 같다고 했지만 현의 재촉에 결국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을 하려면 책상이나 무릎을 박수치듯 치며 박자를 맞춰야 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조그맣게 했지만 게임을 진행하며 소리가 더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한 교실 안에는 우리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와 말소리만 들렸고 담임 선생님은 참지 못하고 우리를 교실 앞으로 불러 혼냈다. 적당히 하지 못했던 현과 나의 목을 꼬집어 당기며 담임 선생님은 화를 억누르고 우리를 거의 2시간 동안 교실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나는 얌전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이렇게 벌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오래 벌을 받으며 몸이 힘든 만큼 현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나를 문제아라고 여기며 지리멸렬한 눈빛으로 쏘아본 것이 큰 상처였다.
어느 날은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아 그 날 청소당번으로 정해졌다. 나와 또 다른 아이들이 청소당번이 되었는데 현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냥 집에 가자고 무작정 날 끌고 나왔다. 나는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했지만 현은 막무가내였다. 자기가 혼날 일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결국 난 집에 갔다가 현을 학원까지 바래다주고 1시간은 지난 뒤에야 풀려났고 그때 다시 학교로 갔다. 학생들은 거의 없고 조용한 학교에 나 혼자 오려니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보통 학생들이라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시간에 내가 있는 것이 불량한 학생이 된 것 같아 무서웠다. 반에 가니 선생님은 내가 그 시간에 온 것에 놀랐고 나는 다른 청소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내가 미안해 다시 온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다음날 청소당번이었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내가 없었음을 성토했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내가 늦게라도 미안한 마음에 왔다며 날 두둔했다. 선생님이 내 마음에 집중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내 학교생활은 더 괴롭고 힘들어졌을 것이다.
보통의 초등학교 학급처럼 반에는 칭찬스티커와 경고스티커를 붙여 적립하는 표가 모든 학생들의 이름과 함께 크게 붙어 있었다.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착한 이미지의 나는 칭찬 스티커를 종종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온갖 핑계를 갖다 붙여 현은 내 이름 위에 경고 스티커를 붙였다. 내가 표준어가 아닌 말을 쓰면 욕을 했다고 선생님께 달려가 경고 스티커를 받아다 붙였고 물건을 떨어뜨리면 쓰레기를 버렸다고 일러 경고 스티커를 붙였다. 그 외에도 다른 아이가 대충 붙여 놓은 경고 스티커를 떼다가 내게 붙였고 심지어는 선생님이 자리에 없을 때 경고 스티커를 몰래 가져다 붙이기까지 했다. 학기 중반이 넘어가면서 경고 스티커의 갯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 중간 점검을 했고 나는 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고 스티커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수의 스티커를 가진 아이들은 보통 반에서 가장 선생님 속을 썩이는 학생으로 누구도 경고 스티커 수에 이견이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가장 경고를 많이 받은 학생 중 하나인 것을 보자 무언가 잘못되었나 할 정도였다. 얌전하고 착한 아이로 살아온 나는 피눈물이 흐르는 심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학원에 가는 일이 없는 날에 현은 나와 집 가는 길에 이리저리 새서 바로 집에 가는 것을 최대한 미뤘다. 그때 현의 표정을 전부 기억하는데, 현은 정말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있었다. 현이 학교에서 다른 애들과 우악스럽게 체육활동을 하거나 여자 아이들한테 짓궂은 장난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당시의 나는 항상 지쳐있었고 현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현의 표정이나 감정을 이해해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 기억해보면 현은 나만이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며 나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다른 애들한테는 민망해서 하지 못할 재미 없는 농담도 내겐 곧잘 했다. 인기였던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얘기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하지 않을 드라마 줄거리 얘기도 날 앉혀두고 열심히 했다. 난 전부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듣는 척하며 현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현은 내가 그렇게 귓등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나와의 시간에 몰입해 있었다.
괴롭힘이 극에 치달았던 학기 말, 현은 내게 의형제를 맺자고 했다. 삼국지 같은 것을 만화로 읽는 일이 많았던 때라서 그런지 어디서 의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게 말했다. 나는 소름끼치게 싫어서 웬 의형제냐며 반문했고 현은 다른 이유 설명 없이 ‘우리 의형제 맺자’ 라고 했다. 아마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 방법으로 의형제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현은 나와 항상 함께 하고 싶었고 정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안해했다. 아무리 나를 강압적으로 옆에 두고 있어도 내가 떠나갈 거라는 두려움이 항상 현을 괴롭혔다. 현은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종종 내게 확인해야 했고 내 대답이 뜨뜻미지근하면 나를 마구 때리고 할퀴었다. 종래에는 밝은 표정으로 ‘그럼!’이라고 말하는 방법까지 기계처럼 익혔다. 하지만 그건 현이 시켜서 한, 현이 만들어낸 세계였고 현은 무의식적으로 그걸 알았다. 그래서 항상 불안했던 현은 나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어했다.
우리가 의형제가 되면 누가 형이냐고 하자 현은 ‘당연히 내가 형이지!’라며 주먹으로 날 때렸다. 나는 현과 형제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동생이 되는 것은 더 싫었다. 현을 싫어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때라 현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싫었고 현과 수직적인 위계를 가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 불쾌했다. 나는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의형제를 맺는 일은 꽤 무거운 일이라 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현은 그 이상으로 더 얘기하지 않았다. 정말 형제의 관계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했고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간 뒤 교육을 전공하면서 문득 현을 떠올렸다. 여러 문제 아동들의 심리와 병리적인 이상심리에 대해 공부하며 현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으로가 아니라 머리로. 현의 행동을 용서하거나 용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게 그렇게 집착했던 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 후에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