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

7. 현-2

by 해파리

5학년 때 현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불안했다. 2학년 때 현은 나를 표적으로 삼고 괴롭힌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나는 어느 정도 현이 날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 같다.

4학년 마지막 날, 집에 가는 길에 현과 마주쳐 ‘어 너도 00반이야?’ 라고 하며 서로 반을 확인하고 돌아가면서 나는 작은 마취제를 내면에 놓았다. 그렇게 하면 불안함이 사그라들고 별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5학년 때는 내게 있어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큰 흉을 남긴 시기가 되고 말았다.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에 현은 나와 집에 가는 길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나왔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나는 현과 함께 집에 돌아가야 했다.

처음에 현은 평범한 같은 반 친구처럼 굴었다. 그리고 내가 원치 않게도 현은 나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점점 많은 부분을 나와 함께 하려 들었다. 성의 초성이 나와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학급 번호가 가까이 있었고 나와 현은 같은 모둠에 앉게 되었다. 보통 남자 여자를 짝지어 앉혔지만 남자가 더 많았던 우리 반 특성상 남자끼리도 짝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현은 가끔 아예 내 옆에 앉았고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책상에 짝으로 앉아야 했기 때문에 현과 나는 매우 가깝게 붙어 있어야 했다.

모둠 수업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라 당시 대부분의 학급이 모둠 조로 편성되어 자리 배치까지 모둠 형태로 앉아야 했고 수업도 모둠끼리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같은 조여도 옆에 앉지 않으면 수업 시간 동안 덜 시달릴 수 있었겠지만 현이 내 바로 옆에 앉았기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시달려야 했다.

당시의 현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adhd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에서 가장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장난을 치다 걸리는 학생을 꼽으라면 현이었다. 체육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며 장난을 과하게 치다 다른 학생을 울리기까지 하는 학생. 이외에도 많은 점들이 현이 adhd였음을 추측하게 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 입장에서 40분의 시간은 지루함의 무덤이다. 그 순간에 바로 옆에 자기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존재가 있으니 현 입장에서는 내게 자꾸 손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업 시간에 자꾸 말을 거는 식이었지만 수업 시간에 떠들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내 반응에 작게 화가 났을 것이다. 도전 정신을 자극당한 현은 툭툭 나를 치거나 하며 내 관심을 요했고 거기에 반응하는 내 모습에 신이 났을 테고 맞으면서도 크게 반응할 수 없는 내 모습에 새로운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현의 장난은 장난이 아닌 수준으로 격해졌고 나중에는 때리는 것 이상의 것으로 날 괴롭게 했다.

내 관심과 반응을 보고자 했던 초반의 장난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현은 날 괴롭게 하는 것이 제 1 목표가 되었다.

현은 자꾸 옆구리를 찌르거나 때렸고 조용한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다같이 유인물 문제를 풀며 고요한 시간에도 현은 내게 말을 걸거나 때렸다. 현이 나를 자극할 때마다 선생님을 불렀고 선생님을 부르면 현은 잠시 주춤하며 멈추는 척했다. 현은 물러났다가도 연필로 내 손을 찍거나 목을 찔렀고 나는 다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은 귀찮은 듯이 그러지 말라는 식으로 넘겼고 현에게 그건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선생님을 자꾸 불러 선생님이 짜증이 났던 것이다.

결국 현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반응했다는 이유로 나는 현과 함께 떠들었다고 혼났고 나와 현은 팔을 만세하듯 들고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내 의사와 달리 벌을 받는 게 억울했지만 그보다 더 억울한 건 모범적이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선생님이 날 문제아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상심한 와중에 현은 내 오른편에서 가래를 끌어 모으더니 내 오른 어깨에 진득하게 뱉어냈다. 놀란 내 모습을 보고 현은 징그럽게 웃었고 나는 선생님을 불렀지만 선생님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 라 대답했다. ‘현이…’ 라고 하다가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다물었다. 현은 내 오른편 어깨에 묻은 자신의 가래를 보고 역겹게 웃었다.

누군가 크게 넘어지거나 사고를 치는 순간을 찍은 홈비디오를 보며 다같이 웃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효과음과 함께 홈비디오 속 사람들은 엎어지거나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고 흙탕물을 뒤집어쓰거나 음식을 온몸에 묻혔다. 누군가에게 끔찍한 사고가 맥락 없이 보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현은 내 모습을 마치 그 프로그램 속 사람처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꼴이 되게 만드는 것은 현이었다. 나는 현을 위한 가상 세계 시뮬레이션 인간이었고 현의 의도대로 비참한 꼴이 되어 나자빠졌다. 그리고 현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주 크게, 아주 징그럽고 역겹게 웃었다.

당시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지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쉬는 시간에 얼른 수돗가에 가 셔츠 오른편을 훔쳐냈다. 현의 가래는 점도가 높았고 그 사이 말라 더 씻기 어려웠다. 수돗가에서 셔츠를 닦는 날 따라온 현은 또 침을 뱉을 것처럼 입술을 모았고 나는 질겁했다. 현은 그런 내 모습을 아주 좋아하며 웃었다. 그 시기의 현은 아주 즐거웠던 것 같다.

그때는 교실에서 급식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 식판을 가져와 점심을 먹었다. 현과 딱 붙어 매일 급식을 먹었고 난 체할 것 같은 심정으로 점심을 꾸역꾸역 먹었다. 어느 날은 카레 라이스가 급식으로 나왔고 나는 밥을 떠 카레에 비볐다. 현은 그때 가래를 모아 내 카레에 뱉었다. 나는 뭐 하는 거냐고 했지만 현은 그것까지 비벼먹으라며 비릿하게 웃었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애는 깔깔 웃었고 나는 구경거리가 된 채로 현이 뱉은 가래 부분을 베어 내듯이 떠냈다. 그렇지만 이미 비위가 상해 나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전부 버려야 했다.

현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현과 함께 집에 가야 했고 현은 그 시간이 아쉬워 집 주변을 뱅글뱅글 돌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나와 이야기하며 놀았다. 학교가 끝나는 게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신호처럼 여겨졌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내 삶의 대부분을 기한도 없이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는 여러 종류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현의 공부에 엄격했던 현의 어머니는 현을 몇 개의 학원에 다니게 했고 현은 매일 하나씩은 학원 수업이 있었다.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현은 내가 학원까지 자기를 바래다주길 바랐다. 학교가 끝나고 함께 아파트에 온 뒤 현은 10분 뒤까지 아파트 후문으로 오라고 했다. 올 때 천 원씩 가져올 것도 일러두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나가기 전에 집안을 뒤지며 어떻게든 천원을 찾으려고 했다. 다행히 엄마는 자잘한 동전을 여기저기 두는 편이었고 그것들을 주워 천원을 맞춰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걸어서 15-20분이 되는 거리를 가는 길에 현에게 먹을 것을 사주거나 문방구 앞 오락기 비용을 대줘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학원 교실 앞까지 간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고 다시 집에 오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날 때가 많았다. 어딘가로 나가는 일이 잘 없고 친구랑 놀다가 들어오는 편도 아닌 내가 평소보다 더 늦게 들어오자 엄마는 어디 다녀왔냐고 묻는 일이 잦아졌고 나는 어물어물 변명하다가 이상한 시선을 받은 채로 방에 들어갔다.

현을 따라 알지도 못하는 학원에 가는 것은 귀찮고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현에게서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무치는 부끄러움과 허탈함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날 괴롭게 했다. 돌아오는 내내 나는 내 비참한 꼴을 상기하며 부끄러워했고 이런 꼴의 나를 자조적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고 날 몰아세우기만 할 거라는 생각에 더 서글퍼졌다. 난 무기력과 수치심을 내면화했고 점점 어그러져갔다.

어느 날 현은 학원 가는 길에 있는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내가 준 돈으로 게임을 하다 과자 상품을 탔다. 작고 동그란 옥수수 과자에 당분이 살짝 코팅된 색색의 과자였다. 현은 기분 좋게 일어나 손바닥보다 작은 그 과자 봉투를 뜯어 조금씩 먹으며 걸었다. 나는 힘이 빠진 반려견처럼 현 옆을 졸졸 따랐다. 학원 건물에 도착한 현은 교실 앞까지 날 데려가더니 과자를 가지고 학원에 갈 수 없다며 내가 양손을 모으게 하더니 과자를 거기에 버리듯이 부었다. 그러고 봉투를 버린 현은 웃으며 너 다 먹어라 라고 하고 교실에 들어가버렸다.

양손을 그러모은 채로 과자를 신주단지 모시듯 받쳐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손을 봉인 당한 것과 같아서 버튼을 누르기 어려워 난감해하던 나는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엘리베이터 구역 옆에 난 작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5층의 상가는 꽤 높았다. 과자를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모범적으로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기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밑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했고 저절로 손을 기울여 과자를 창문 밖으로 천천히 떨어뜨렸다. 아직도 과자들이 알알이 떨어지던 장면이 기억난다. 바닥에 떨어지며 보이지 않게 되는 과자들을 보며 나는 한 가지 감정을 느꼈다. 부럽다. 나도 과자를 따라 바닥으로 낙하하고 싶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던 그 날은 조금 흐린 날이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칙칙했던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보이지 않는 맨틀이 용융되어 꿈틀거리는 듯 내면에서 무언가 불편하게 또아리를 트는 것 같았다.

keyword
이전 06화꽈배기가 맛있어서 죽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