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현-1
헌이 사라진 이후에도 2학기에 자잘하게 날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겨울이 되었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헌의 일로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내 상황에 대한 신호를 보내기를 멈췄고 체념하며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것으로 내 태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2학기의 괴롭힘은 헌처럼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기도 했기 때문에 꾹 참고 넘길 수 있었다. 참는 동안 내면은 황폐화되었지만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5학년으로 올라가며 반 발표가 났고 2월 학교 마지막 날 집으로 가며 나는 현과 마주쳤다. 현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끼리도 알고 지내던 아이로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윗층에 살고 있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가까이 사는 동갑 학생이었기 때문에 평소 친구들과 교류가 없던 날 두고 엄마는 현과 친하게 지내라는 식으로 권하곤 했다. 현의 어머니도 매우 친절했다. 하지만 현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2학년 때 현과 같은 반이었을 때 현은 내게 몹시 못되게 굴었다. 장난기가 많았던 현은 항상 짓궂은 장난을 여자 아이들에게 치곤 했고 선생님의 타박을 종종 받았다. 나에게도 거친 장난을 쳐 힘들게 하는 일이 있었다.
지속적인 괴롭힘은 아니었지만 나는 현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현과 친하게 지내라는 엄마의 말은 절벽으로 날 내모는 것처럼 들렸다. 엄마의 말에 싫다고 말을 하기 어려웠던 나는 언젠가는 현의 집에 놀러가기까지 했다. 현은 내가 집에 놀러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고 현의 엄마도 나의 엄마도 그것을 반갑게 여겼다. 날 빼고 모두가 기꺼워하는 그 사안에 나는 반기를 들지 못했고 어려운 과제를 하는 것처럼 임했다.
현의 집은 재미가 없었다. 현은 내가 온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모양이다. 애초 나는 사회성이 떨어져 누군가와 함께 노는 것을 잘 하지 못했다. 친구 집에 우연히 가게 되어도 그곳의 책장을 훑어보며 혼자 책이나 읽곤 했기 때문에 함께 무언가를 하는 방법을 익히기 어려웠다. 현은 내가 책을 읽지 못하게 했다. 현은 매우 똑똑했다. 내가 책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자기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한 두 시간 있다 피로해진 나는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고 현은 그 말에 악귀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안된다고 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와 현만 있었기 때문에 현은 내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은 조금은 거칠게 날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고 나는 조금은 아파하며 현에게 이끌려 다녔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에 현은 무섭게 성을 냈고 나는 그러면 전화라도 하게 해달라고 했다. 현은 전화기를 몸으로 감싸며 전화 못하게 할 거라며 전화선 코드까지 뽑을 기세였다. 그렇게 그날 나는 현의 인형처럼 휘둘리며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기만 했다.
현이 자꾸 장난을 쳐 망아지 같다고 생각한 2학년 담임 선생님은 현을 교회에 보내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교회를 다니면 현이 선심을 배우고 차분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나는 친한 같은 반 친구를 따라 교회를 나간 지 2주 째였다. 반에서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을 손 들어보게 한 뒤 가장 양순한 나를 찍어 선생님은 현에게 날 따라 교회를 갈 것을 명했다. 당시는 토요일도 학교에 나가는 시기였고 일요일 하루는 현을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명에 의해 나는 일요일조차 현을 만나야했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현을 교회에 이끌고 가야 하는 임무까지 맡게 되었으니 내 가슴 속 무게추는 한없이 곤두박질 쳤다.
한 달이 넘는 정도 현을 매일 보는 나날을 보내며 꾸역꾸역 참은 결과 현은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고 나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만 숨을 쉰다고 충분한 게 아니었다.
여름 방학 어느 날, 친구와 교회를 다녀왔고 엄마는 돌아온 내게 오늘은 뭘 기도했느냐며 웃으며 물었다. 나는 농담처럼 방학이 연기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고 엄마는 갑자기 야수처럼 표정을 바꾸더니 화를 냈다. 하여간에 그런 거나 기도하고 앉아 있다고 하며 베란다에서 정리하고 있던 물건들을 거칠게 내려놓고 던지듯 했고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괜히 혼나는 마음에 억울하고 서글퍼져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학교에 가기 싫어 하는 것은 죄로 내게 인식되었다.
Adhd인 나는 자주 덤벙대고 대화의 맥을 짚지 못했으며 그래서 입을 다물고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남았다. 하지만 준비물을 빼먹는 일은 조용히 있는다고 티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체육이 들어 있는 날은 모두 체육복을 입고 등교해야 했는데 하도 체육복을 입지 않고 오는 애들이 생겨 담임 선생님은 체육복을 입지 않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체육 시간에 다른 수업을 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체육이 들었던 어떤 추운 늦가을, 나는 체육복을 입지 않고 등교했고 담임 선생님이 오기 전 아침 시간에 현은 체육복을 입지 않은 날 보고 윽박질렀다. 현은 체육을 제일 좋아했고 나 때문에 체육을 듣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구 성을 냈고 당장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 나는 도망치듯 교실을 나섰다. 시뮬레이션 게임(심즈) 인간 아바타에게 한 가지 행동 명령을 내리면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명령을 하달받은 심처럼 머리가 새하얘져 어서 집에 가서 체육복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한 채 교문을 나섰다. 초 2 학생에게 학교에 왔다가 등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집에 다녀오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불량한 모험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넘어서는 현의 명령에 나는 털레털레 집에 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교보다 등원 시간이 늦는 동생의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동생을 바래다준 엄마가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 내가 도착한 것이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상한 미소를 팽팽히 당기며 나는 체육복을 입지 않았다고 조용히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와 엄마 말고도 다른 학부모들이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구석에 있었고 엄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체육복을 갈아입혀 주는 손길을 받으며 경계심이 누그러진 나는 결국 울어버렸다. 엄마는 내가 체육복을 입지 않고 갔던 게 속상한 거라 생각했는지 웃으며 나를 달래주었고 나는 얼른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반에 들어서자 모두 조용히 앉아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자리에 있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오지 않은 불량아가 된 기분으로 쭈뼛쭈뼛 자리로 돌아왔다. 왜 나갔다 왔냐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체육복 때문이라고 답하자 담임 선생님은 체육을 평소 엄청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그렇게까지 체육복을 입고 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았다.
교실을 뛰쳐나갔을 때, 등교 시간이 지나 아무도 없는 한적한 등굣길을 뛰듯이 지날 때,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유치원 등원 시간에 튀어나온 돌처럼 나타났을 때, 다시 학교로 돌아가며 쌀쌀한 바람을 볼에 맞을 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불량아처럼 교실에 들어설 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혼자였고 수치심과 외로움만이 내 세계에 바닷물처럼 차있었다. 그리고 그걸 겪게 한 현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아침에 배달 온 어린이 신문이나 읽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알 수 있다. 난 그때 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