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는 걸 좋아한다. 추워서 집에만 있고 싶은 겨울마다 퍼즐을 맞춘다. 여름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 퍼즐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이번 겨울에도 500쪽짜리 두 판을 맞추고 지금 세 번째로 1,000조각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로 맞춘 건 ‘곰돌이 푸와 좋은 친구들’인데 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지 1년만이었다. 지난겨울에는 집안에 우환이 있어 퍼즐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퍼즐은 색감과 분위기가 따뜻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밝아진다. 심신이 힘들었던 작년에 맞추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 그림은 화사한 색상이 좋다. 그래야 맞출 때도, 다 맞추고 보았을 때도 기분이 좋다. ‘몽셍 미셀’에 갔다가 산 ‘몽셍 미셀’ 퍼즐은 파란색과 보라색이 많이 들어있다. 맞추는 동안 명도와 채도만 차이나는 파란색과 보라색만 계속 보고 있으니 재미도 없고 마음도 어두워졌다. ‘blue’에 우울하다는 뜻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두 번째로 맞춘 퍼즐은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사람들’이다. 이것도 프랑스에서 미술관에 갔다가 쓸데없지 않을 기념품이라 여겨 샀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절반이 노란색 바탕인데 비슷한 노란색 조각이 너무 많아 맞추기가 몹시 어려웠다. 노랑은 아주 밝은 색인데도 자꾸 안 맞으니 질리고 말았다. 빨리 끝내버리고만 싶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샛노란 해바라기를 그렸던 고흐가 생각났다. 퍼즐을 맞출 때 바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좋지 않다. 넓은 하늘, 너른 풀밭은 힘들기만 하다. 다양한 사물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어야 한 조각을 보더라도 궁리하며 맞출 맛이 난다.
지금 맞추고 있는 퍼즐은 ‘피터 팬’이다. 딸이 사촌이랑 맞추려고 샀다는데 도시의 건물과 다리, 빅 벤이 보이고 강에는 배들이 떠 있다. 적갈색 지붕의 집들과 숲이 있고 하늘은 붉고 노랗고 파랗다. 그 속을 피터와 웬디와 마이클과 우산, 인형, 강아지까지 날아가고 있다. 한쪽에선 팅커벨이 온몸에 금가루를 반짝이고 있다. 네버랜드를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가슴이 설렌다. 명랑한 분위기가 내 마음을 환하게 한다. 그래서 맞추기가 아주 재미있다. 조각의 품질도 외국의 관광지에서 산 것보다 좋다. 매끈매끈하여 촉감이 좋고 제 자리에 가면 꼭 맞는 자물쇠와 열쇠가 만난 것처럼 찰칵 들어간다. 그럼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그래서 ‘이삭 줍는 사람들’보다 조각이 두 배로 많은 데도 더 쉽게 느껴지고 두 배 이상 재미있다.
아이들 어릴 때 몇 조각 안 되는 퍼즐을 사주었을 때는 두뇌 계발 차원이었다. 재미있게 놀면서 관찰력과 공간 감각이 키워지기를 바랐다. 관찰력은 맞추는 데 필요하다. 그런데, 적은 조각이 각기 다른 모양이면 몰라도 몇백 개짜리 조각은 모양이 거의 똑같아서 공간 감각 향상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지금 맞추는 퍼즐은 1,000조각인데도 모두 칼로 자른 듯 각져있지 않고 가장자리가 부드러우며 좀 특이한 모양도 섞여 있어 그 점도 마음에 든다.
아이들은 커갈수록 점점 더 많은 조각을 맞추었다. 관심 있는 대상이 나오는 퍼즐이면 수가 많아도 겁내지 않고 덤벼들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산 300쪽짜리 ‘쥬라기 공원’이 생각난다. 사서 집에 오자마자 나와 두 아이에, 남편까지 합세하여 공룡에게 덤벼들었다. 각자 그림의 이쪽저쪽에서 맞추느라 애쓰다 제일 먼저 나가떨어진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 전에 퍼즐을 맞춰본 적이 없는 그는 잘 안 맞는다고 스트레스를 받더니 손을 놓아버렸다.
어른은 아이보다 그림 보는 눈이 없다. 아이들은 아주 작은 단면을 보고도 그것이 공룡의 발톱 끄트머리인 줄을 잘도 알아냈다. 풀 줄기나 휘어진 나뭇가지나 늪에 있는 작은 물방울 조각도 어른보다 훨씬 잘 알아보았다. 남편이 떠난 뒤 나도 식사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떴다. 아이들은 그대로 있었다. 밥하면서 보니 저희끼리 그림판의 위로, 아래로 살피며 열심히 조각을 맞추고 있었다. 내가 맞추려고 했는데, 하며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누구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날 밤늦게까지 온 식구가 공룡 시대를 샅샅이 탐험했다.
300쪽 다음에는 500쪽에 도전했고 학년이 높아졌을 때 드디어 1,000쪽짜리를 샀다.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나오는 그림이다. 500쪽도 쉽지는 않았는데 2배나 많으니 꽤 어렵겠지, 더 오래 재미있게 놀 수 있겠네, 다 맞추면 얼마나 근사할까, 아이들과 나는 기대감으로 설레며 상자를 개봉했다.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든 조각은 묵직했다.
남편은 ‘쥬라기 공원’ 이후로 퍼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직장 일로 바빠서 그럴 틈도 없었지만 쉴 때도 옆에서 나나 아이들이 맞추고 있을 때 단 한 번도, 한 조각도 만져보지 않았다. 완성된 걸 보고 다 맞췄네, 하는 말 정도만 했다. 활동적인 남편의 취향은 아니었다. 내 취향에는 맞아서 자주 아이들과 같이 퍼즐을 맞추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퍼즐은 숲을 이루는 나무의 명암과 채도가 다양했다. 성이라는 건물은 자연에서 도드라져 쉬운 편이나 하늘, 바다, 숲 같은 자연물은 비슷하면서 달라 제 자리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깨와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며 그럴듯한 조각을 갖다 대다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난히 안 맞던 게 아주 작은 실마리로 제 자리를 찾게 되면 얼마나 기쁘던지. ‘아, 여기였네!’ 하고 셋이 동시에 박수를 쳤다.
조각을 편하게 맞추고 청소할 때 전체를 옮기기 좋도록 집에 있던 두꺼운 상품 상자를 펴서 커다란 판을 만들었다. 다 맞추고 보면 500쪽 퍼즐의 두 배나 되는 커다란 그림이 아주 멋있었다.
겨울방학 때 거실에서 아이들과 퍼즐을 맞추자면 바닥은 따뜻해도 외풍이 세어서 코도 손도 차가웠다. 그런데 아이들의 손을 만져보면 어찌 그리 따뜻하던지. 고구마를 쪄서 함께 먹다 보면 내 손도 녹았다. 맞추다 싫증이 나면 아이들은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숙제도 시험도 아닌데 몇백 조각이나 천 조각을 단번에 다 맞출 필요는 없지.
기차 놀이한다고 온 마루에 둥그렇게 철로를 깔고 입으로 치이익, 치이익, 칙칙폭폭, 칙칙폭폭, 하며 기차를 밀고 가던 아이들. 놀다 보면 창밖에 눈이 펄펄 내리기도 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지붕에 하얗게 쌓이던 눈.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햇살처럼 환했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아침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퍼즐 판 앞으로 간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 맞춰야지, 하지만 잘 안 맞는다. 그러면 이걸 꼭 맞춰야지 하는 오기가 생긴다. 몇 조각 찾아 맞추는 데 시간이 휙 날아간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화될 동안 10개만 맞추자, 하지만 잘 맞으면 잘 맞아서 더 많이 맞추고 싶다. 그래서 5개만 더, 3개만 더, 하다 보면 30분, 한 시간이 금세 사라진다. 시간이 안 가고 심심해 죽겠다는 사람에게 퍼즐 놀이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벌써 자식들에게 말해놓았다. 내가 몹시 나이 들어 다른 걸 못하고 심심해하거든 재미있는 퍼즐을 사다 달라고. 그럼 혼자 조용히 잘 놀겠다고.
겨울에만 퍼즐을 맞추어서 퍼즐, 하면 겨울이 떠오른다. 반대로 겨울, 할 때 퍼즐이 떠오르기도 한다.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았다. 지금 맞추는 ‘피터팬’을 다 맞추고 나면 오랜만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한 번 맞춰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맞추기 시작하면 몇 주일씩 마루에 펼쳐져 있던 그 퍼즐은 하도 여러 번 맞추는 바람에 상자가 해져 조각들만 비닐봉지에 담아놓았다. 이제 큰아이는 집에 없고 작은아이도 바쁘니 혼자서라도 꺼내어 맞춰볼까.
아이들과 퍼즐을 맞추는 데 쓴 시간을 헤아려 본다. 적은 수의 퍼즐은 빼더라도 500조각에 500시간, 1,000조각에 1,000시간쯤 될까? 더 될지도 모른다. 그토록 많은 시간이 아이들과 추억을 쌓는데 들어갔다. 우리가 맞춘 조각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늘도 나는 퍼즐을 맞추며 아이들과 함께 놀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의 조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