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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샐리에게
by
가을산
Mar 14. 2025
또 사라졌다
고구마순 껍질 까는 데 두 시간
냉이 다듬느라 한 시간 반
저녁 짓고 먹고 치우고 아침 쌀 씻어 안치고 마무리까지 세 시간
밤이야 길겠지만 피곤이 몰려오는데
인공지능이 시와 소설을 쓴다고?
하!
쌀에다 콩 넣고 밤 넣고 물 넣으면 떡 쪄 나오듯이
단어 몇 던져 넣으면 시나 소설이 툭 떨어진다고?
사람이 쓴 것과 구별 안 될 정도에 구성도 완벽하다고?
그럼 뭐, 누가 원했는데?
필요하지도 않은데
샐리야,
소설 쓰고 앉아있지 말고
인간이 소설 쓸 시간을 앗아가는 일을 해
넌 인간을 위해 있으니까
예술이라니, 이리 와
손톱으로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까서 벗겨
인공지능이니 한 다발에 오 분이면 되겠지
냉이는 엉킨 뿌리의 흙을 털고
굵은 뿌리는 쪼개고
상한 잎을 뜯어내
끝나면 깨끗이 물에 씻어
냄비를 꺼내
물을 적당량 넣고
불에 올려
물이 끓으면 냉이를 집어넣고 뒤적여
데쳐지면 건져
찬 물에 두어 번 씻어
꼭 짜서 깊은 그릇에 담아
파는 썰고 마늘은 다지고
간장으로 간 맞추고
참기름을 넣고 무쳐
깨를 솔솔 뿌려
접시에 적당히 담아
적당이 몇 그램인지는 묻지 말고
남은 건 뚜껑 있는 유리 그릇에 옮겨 담아
밥이 다 됐으면 행주로 식탁 닦고
사람 수대로 수저를 놔
냉장고를 열고 반찬을 꺼내 먹을 만큼 덜어
호박전은 납작한 데, 김치는 우묵한 데
밥은 밥그릇에, 국은 국그릇에
왜 꼼짝 안 해, 샐리?
알지. 네가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도 없다는 거
배운 적 없는
인간만이 해 온 일이니까
한 송이 국화가 어떻게 피는지는 과학적으로 설명도 하겠지만
한 접시 나물이 피는데 할 수도 없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줄은 몰랐을 걸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나 외치고 싶은 넌
입만 살아서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고 코를 풀어줄 줄도 모르면서
인간의 마음까지 이해한다 우기지
허리가 빳빳한 너는 세탁통 깊숙이 든 빨래를 꺼내지 못하고
하나씩 털어서 셔츠는 옷걸이에, 바지는 길게, 양말은 한 짝씩 펴서 널 줄도 모르지
소설 쓰는 게 더 쉽겠다고?
시나리오도 쓴다고 소문났던데
다 소용 없어
그런 거 잘하는 인간은 많거든
대체 불가 아니면 예술은 끝이야
작가가 감정이 없는 넌 줄 알면 감동도 취소할 거야
진짜가 아닌 것 같거든
잘해야 본전도 안 되는 소설 대신
나물 다듬어 무치기를 해 봐
상 차리기와 빨래 널고 개기도 좋지
감정 없어도 되고
해내면 넌 대체 불가 인공지능
그게 너의 예술이야
나의 꿈이고
네가 나물을 깨끗이 다듬어 무치고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꺼내 널고, 걷고, 개고, 서랍 속에 넣어준다면
시간을 붙들어 둘 수 있어
시는 내가 쓸게. 작곡도 내가 하고 그림도 그릴게
부탁이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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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소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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