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군기가 함께였던 날들

차라리 스킨스쿠버 산소통에 머리를 받아서 기절하는 게 낫지 않을까

by 셀레나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애정이 참 많으셨다. 내 또래 아들 둘의 엄마셨어서 그런지, 팀 선수들을 친딸처럼 예뻐해 주셨다. 항상 뭐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하고 그렇게 자주 안아주시곤 했다. 아직도 어릴 적 선생님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진 따뜻한 품과 향수 냄새가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훈련이 시작하면 완전 호랑이 선생님으로 변하셨다. 루틴을 하다가 계속 같은 실수가 반복될 때면 음악이 뚝 끊기고, 선생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민트색 크록스 슬리퍼가 물속으로 날아들 때면, 우리는 그걸 주워서 다시 데크로 가져다드렸다. 다 같이 집중을 못하면 데크로 불려나가 킥판으로 엉덩이를 한 대씩 맞기도 했다. 킥판으로 맞으면 소리는 엄청 크지만, 사실 그렇게 아프진 않다. 이렇게 삼엄한 훈련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군기가 바짝 들어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누군가 운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세 시간 훈련 중 지상 훈련 한 시간, 수영 한 시간, 그리고 아티스틱 스위밍 훈련을 하는 일정이었는데, 그중 수영 훈련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코치님께서 이른바 '지옥의 피라미드 훈련'을 가져오신 것이다.


자유형으로 25m, 50m… 150m까지 거리를 늘려 갔다가, 다시 150m에서 25m까지 줄여나가는 구조였다. 그런데 여기에 호흡 수 제한까지 있었다. 25m는 세 번에 한 번, 50m는 다섯 번에 한 번, … 150m는 열세 번에 한 번 숨 쉬기, 이런 식으로 호흡 수도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간 제한까지 있었고, 한 명이라도 기록을 못 맞추거나 호흡 수를 지키지 않으면 전원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아주 무시무시한 훈련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첫 번째 시도 때는 나를 포함한 몇몇 후배들이 '이 많은 사람들 숨 쉬는 걸 다 보시진 못하시겠지' 하고 호흡 수를 지키지 않다가 들켜서, 전원이 다시 했다. 두 번째는 호흡 수를 악착같이 지켰지만, 체력이 방전돼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설마 했지만, 정말로 세 번째 시도가 주어졌다.


그렇게 세 번째 시도에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화도 났다. 그냥 수모랑 물안경을 집어던지면서 못해먹겠다며 나가버리는 상상도 했고, 다이빙풀 안에 있는 스킨스쿠버하는 분들 산소통에 머리를 받아 기절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물안경에는 눈물이 차올라서 거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 팔과 다리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고 끝내 호흡수도 지키고 기록 내에 전원이 들어왔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나의 한계를 도전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념을 체화하게 되었다. 그게 지금 나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자부한다. 어쩌면 억지로였고 반항심도 많이 올라왔지만, 물안경에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팔과 다리는 쉼 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훈련의 축적이 지금 나의 삶의 거름이 되었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결정해 놓고도 자꾸 다른 생각이 드는 때가 정말 많다. 그럴 때도 그냥 해내는 내 근성은, 사랑하는 한국의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애정 어린 코칭 덕분이다. 그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렇게 한국의 코칭 메커니즘에 길들여진 나는, 캐나다로 떠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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