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현지 클럽에서 유일한 동양인 선수
운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고, 나는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 대회를 넘어 전국대회에도 출전하기 시작했다. 매일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며, 시합이 있을 때는 지방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중, 내가 훈련하던 클럽에 캐나다에서 국가대표 출신 코치 선생님이 오셨다. 그분은 한국인으로서 캐나다에서 운동하며 국가대표로 올림픽까지 출전한 대단한 분이었다. 캐나다는 아티스틱 스위밍의 종주국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캐나다 국가대표 출신의 코치님이 오시면서 클럽 분위기도 많이 변화했다. 더욱 선진적인 훈련 문화가 생겨났다. 5학년 여름, 감독님께서 나에게 캐나다에서 운동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선수들도 더 많고 인프라도 잘 되어 있어서 운동하기에 좋은 환경일 거라며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도 즐거웠지만 더 큰 무대에서 아티스틱 스위밍을 배울 생각을 하니 설렜다.
부모님께서는 어학연수 겸 운동 연수 차원에서 유학 가는 걸 허락하셨고 감사하게도 전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낯선 땅,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코치님이 선수 생활을 하신 현지 클럽을 연결해 주셔서, 나는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꽤 큰 대형 클럽이었는데 동양인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도착을 했는데 현지 클럽에서는 통역사 없이는 외국인 선수를 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통역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한번 훈련을 같이 해보고 재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첫 훈련에 갔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수영장 풍경, 사람들, 분위기 등. 같이 훈련하게 될 코치님들과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훈련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수영이나 아티스틱 스위밍 훈련 이름은 한국에서도 거의 영어로 써서 훈련 내용을 알아듣고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짧은 영어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긴장됐던 첫 훈련이 끝나고 클럽 측에서는 통역사가 없어도 괜찮겠다는 의사를 밝혀 나는 팀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에서의 일상도 한국과 비슷했다. 새벽 운동은 없었지만 매일 학교 끝나고 차를 타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보통 저녁은 가는 길에 차에서 먹곤 했다. 세 시간 정도 저녁 훈련을 하고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했다. 그래도 캐나다에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한국보다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처음에 학교에서는 국어와 사회 과목과 같은 인문 계열 수업 시간에는 외국인이라 ESL반에서 따로 수업을 했다. 그런데 매일 팀메이트들과 부대끼며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영어가 빨리 늘었다. 덕분에 3개월 만에 ESL반을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팀 종목을 했다. 한국에서는 선수들이 많지 않고 같은 학교여야만 팀 종목을 할 수 있는 제약이 있어서 대부분 솔로 종목만 출전을 한다. 그런데 캐나다는 선수들이 많고 학교 제한 규정도 없어서 많은 경우에 팀 종목을 다 함께 하고, 팀 내 몇 명만 솔로나 듀엣 종목도 같이 한다. 주로 잘하는 선수들이 여러 종목에 출전하는 편이다. 캐나다에서 경험한 팀 종목의 매력은 진정한 아티스틱 스위밍을 새롭게 접한 느낌이었다. 작품 주제의 폭도 훨씬 넓고 재밌는 작품들이 많았다.
같은 종목이지만 한국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캐나다에서 아티스틱 스위밍은 예술적인 부분에 강조가 많이 들어가서 작품 하는 게 더 재밌었다. 운동하는 분위기도 한국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고 자율적이었다. 한국에서 기초 체력 훈련을 할 때 분위기는 꽤 삼엄했다. 늘 긴장 상태였고 반드시 정해진 기록 내에 들어와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다시 해야 하는 그런 훈련도 많았다. 그런 강제성에 의해 한계를 넘어서며 기량이 성장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코치님들은 늘 웃으며 얘기했다. 세상 천사 같은 얼굴로 차분히 자기 스스로의 한계를 도전하라는 말은 하되, 그렇지 못했을 때의 무언가는 없었다. 처음에는 캐나다의 운동 환경이 여유롭다고 느꼈다. 하루는 날 좋은 날 수영장 밖 필드에서 하는 클럽 전체 러닝 훈련이 있었다. 이 날도 어김없이 훈련 중 코치님들은 온화하게 "Let's go!"를 외치시며 응원과 격려의 말만 하셨다.
한국에서였다면 무슨 일인가 하며 쉬엄쉬엄 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캐네디언 선수들은 피니시 라인을 지나고 나서도 토를 할 정도로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훈련에 임했다.
선수 생활 2년 차,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정반대인 코칭 메커니즘에 대혼돈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