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상처
오랜만에 마시는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새벽에 농구하러 나와본 것도 오래전 일이라 이제는 낯설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언제든 원하면 농구하러 나올 수 있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니 성적 때문일까 나오기가 힘들었다.
아무도 없는 농구장에 자리를 잡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경기라고 생각해야 한다.
민의 손을 벗어난 농구공은 가볍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나쁘지 않았다. 민은 한숨을 쉬고 다시 한번 농구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고 골대에 맞아 튕겨 나갔다. 농구라도 하며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새벽이다 보니 더욱더 외로워지는 것만 같았다.
민은 언제나 혼자 자랐고, 해왔기에 혼자가 낯설지 않았다. 아니, 혼자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근데 이제는 어째서인지 혼자가 낯설었다. 그동안 만난 친구들이 자신에게 과분하게 친절하고 챙겨줘서일까 마음 한구석이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 한구석을 누군가가 채워줘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도 민의 곁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있을 수가 없었지만.
민은 그대로 농구장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항상 괜찮다고 여겨왔다. 언젠가 엄마가 공부보다 농구를 하라며 인정해 줄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래서 항상 연습도 남들보다 죽어라 뛰었다. 인정받을 그날을 위해,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기 위해.
민이 홀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곁에 누군가 앉았다. 석이었다.
"야, 농구하고 싶으면 그냥 농구해버려."
"..."
"엄마가 반대하시더라도 그냥 해버려. 나처럼 이제 와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낼 걸 하고 후회하지 말고."
".. 할 거야, 농구."
"그래, 좋네. 혹시 엄마가 반대하시면 나한테 말해. 내가 너 농구 하나는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 형."
"하나밖에 없는 우리 동생인데 형이 뭔들 못해주겠냐."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민을 본 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랜만에 형이랑 농구 한 판 할까?"
"형이랑..?"
"응, 우리 민이 얼마나 잘하나 형이 보려고. 너 농구친구도 생겼다면서. 예전엔 형이 민이 가뿐히 이겼는데.. 이제는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민은 눈물을 닦고 일어나 석과 함께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민과 석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신혜유, 안 일어나?"
"아, 일어날 거야.. 일어날 건데.."
혜유의 뒤척거리는 모습을 본 혜선이 혜유를 발로 살짝 찼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방에 들어와 혜선의 등을 살짝 때렸다.
"동생 때리지 말라 했지."
"깜짝이야, 엄마는 이럴 때만 꼭 귀신 같이 나타나더라?"
"엄마는 귀신이니까."
엄마의 말에 혜선이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엄마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다 서둘러 방을 나갔다.
".. 얼른 나와, 밥이나 먹게!"
혜선은 혜유를 반강제로 끌고 나와 함께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안방 문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닫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혜유가 혜선에게 물었다.
"뭐야, 왜 안방 문 닫혀 있어?"
"아빠 오늘 출근 안 해."
".. 왜 안 해?!"
"몰라, 나도."
혜유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학교 가는 길에 연정과 마주친 혜유는 해맑게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둘은 교실까지 도착했다.
"연정아, 오늘 1교시 뭐야?"
"1교시? 음.. 수학이다!"
"아!! 1교시부터 수학은 안 돼.."
"오늘 수행평가 아니야?"
"하필이면 또 수행평가야?! 망했어.."
"그러면서 또 잘할 거면서.."
"아니거든? 나 진짜 망한 거 맞아.. 연정아, 나랑 같이 학교 째고 확 놀러 가 버릴까?"
연정은 수학 교과서로 혜유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얼른 준비해."
"너무해.. 알았어, 할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