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민은 방 문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민이 모든 걸 다 듣고 있는 걸 석과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언성만 높아졌다.
"민이가 하고 싶을 걸 하겠다는데 그걸 왜 제 탓으로 돌리세요, 엄마? 오랜만에 찾아온 제가 반갑지도 않으세요?"
"안 반가워. 내가 어떻게 민을 죽어라 키웠는데 넌 이제야 나타나니?"
"하, 엄마 진짜.."
"민이 걔, 너 가고 나서 한결 밝아졌어. 하긴, 네가 문제였지. 민에게 처음으로 농구공을 손에 쥐어준 것도 너였잖아."
"네, 제가 농구 알려줬죠. 근데 그렇다고 민이 지금 농구를 안 하고 있긴 해요?"
"안 하고 있어!"
"아니요, 하고 있어요. 민이는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예요. 근데 왜 농구를 못하게 하세요? 다 보여요!"
".. 민이 농구를 하고 있다고? 농구 따위 잊은 지 오래였는데..!"
엄마는 석과 실랑이를 벌이다 말고 민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문 틈 사이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민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성큼성큼 민에게 걸어와 민에게 소리쳤다.
"너 아직도 농구하니? 네 입으로 말해 봐, 직접!!"
민이 선뜻 입을 열지 못하자 엄마가 확신에 가득 찬 눈으로 민을 쳐다보았다.
"어서 말하라고!"
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 해요. 농구한다고요."
기어이 민의 대답을 들은 엄마는 충격에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엄마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마구잡이로 민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민이 맞는 모습을 본 석이 서둘러 엄마를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성을 잃은 채로 울며 민을 때렸다.
"농구, 하지, 말라고, 했잖아..!"
민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계속 맞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엄마를 쳐다보았다.
"전 농구가 좋아요. 처음 농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농구를 해서 후회한 적은 없었어요."
민의 말을 들은 엄마는 민을 때리던 것도 멈추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민의 엄마는 민이 농구는 그만두고 공부만 계속하기를 바라왔다. 공부머리가 없던 아이도 아니었기에 민에게 한 기대가 상상 이상이었다.
".. 죄송해요. 하지만 전 공부보다 농구가 더 좋아요. 학교에서도 항상 인정받아요, 농구 잘한다고. 선생님께서도 저보고 대회 나가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제가 거절했어요. 근데 이제는 거절 안 하고 나갈래요."
농구를 생각하던 민의 머릿속에 혜유가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다시 생긴 농구친구인 혜유가 기억에 남았다.
".. 그리고, 무엇보다 농구친구가 다시 생겼거든요."
민의 말을 들은 석의 두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 예전에 민으로부터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농구친구가 생긴 적이 있다고.
"야, 너.."
"나 농구친구 생긴 거 맞아, 형. 걔랑 농구도 자주 할 거야.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민은 대충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다른 건 몰라도 농구공 하나는 옆구리에 꼭 챙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