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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비밀

by 유진

다음 날 아침, 혜유가 방송부로 인해 일찍 가버린 탓에 연정은 홀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미 혼자서 등교를 해왔건만, 그 잠시동안 혜유와 등교해서일까 혼자서 등교하는 게 낯설었다.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이승현, 너 미쳤냐?"


이승현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연정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흑발에 앞머리가 있고, 상의는 체육복이지만 하의는 축구복을 입고 있는 그저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쟤가 이승현인가? 혜유의 전 남자친구라는..?'


승현으로 보이는 남자애는 옆에 서 있는 남자애와 웃으며 얘기를 하다가 연정과 눈이 마주치고는 입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뭘 봐."


연정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런 애가 혜유의 남자친구였다고..? 불쌍해죽겠네, 우리 혜유..!'


교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유도 교실로 들어왔다. 혜유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이승현이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이승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연정은 애써 꾹 참으며 인사를 했다.


"왔어?"

"응.. 아침부터 방송실 갔다 오니까 더 기운 빠진다.."


혜유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힘없이 연정의 책상에 엎드렸다.


"수고했네, 아침부터."


혜유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연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연정이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갑자기..?"

"응."

"아니..?"

"그래? 근데 표정이 딱 숨기는 거 있는 표정인데.."

"없어."

"숨기는 거 있으면 다 말해. 혼자 앓지 말고."


혜유의 말을 들은 연정은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혜유 너도 혼자 앓지 마.'




학교가 끝나고, 혜유는 강당으로 향했다. 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명 농구친구.

강당에 도착하자 넓은 강당에 민의 농구공 튀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가끔씩 들리는 농구화와 강당 바닥이 마찰되는 소리도 함께.


민은 혜유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흔들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혜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민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무심코 손을 흔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거겠지.


"하루종일 농구만 해?"

"하루종일은.. 아니야."

"그럼? 아, 새벽 5시에 자니까 잠이랑 농구만 하루 종일 하나?"


혜유의 장난스러운 말에 민이 고개를 돌렸다.


"장난치지 마."

"알았어, 장난 안 칠게. 근데 정말 농구만 하루 종일 하는 거 아니야? 볼 때마다 농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오는 시간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이렇게 3가지 아닌가? 난 그 시간에 항상 농구 연습만 하거든."

"맞긴 하지.. 그럼 너도 공부해?"

"하긴 해. 공부보단 농구가 더 재밌어서 잘 안 하고 도망가지."

"학원도 다녀?"

"다니긴 해, 강제로."


혜유는 책가방을 단상 위에 내려놓고 농구공을 주섬주섬 들어 민의 옆으로 갔다.


"같이 하자. 어떻게 해?"

".. 잘."


민은 짧게 대답하고 골대를 향해 공을 던졌다. 단숨에 공은 그물망 소리와 함께 곧잘 들어갔다.


"잘이 뭐야, 잘이..! 너만 잘하면 안 되지, 나도 잘해야지!"

"하는 방법이 있나? 그냥 연습만 주야장천 하면 알아서 잘하는 거야."

"자세라도 알려주면 좋잖아."

"그럼 알아서 보고 따라 해."


민은 공을 주워 와 방금 전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공을 던졌다. 나름대로 혜유에게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혜유는 어설프게 민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 혜유를 본 민이 한숨을 쉬며 혜유의 뒤로 가 자세를 잡아주었다. 팔은 이렇게, 손은 이렇게, 다리는 이렇게. 민이 알려준 대로 해도 아직 자세가 어색해서 그런지 공은 골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나는 왜 안돼..?"

"못하니까. 연습하면 할 수 있어."

"치.."


민은 그런 혜유를 보고 혼자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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