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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

사랑을 받는 법과 주는 법

by 유진

연정은 그대로 도우미 아주머니를 뿌리치고 집 밖으로 무작정 걸어 나왔다. 숨 막히고 이 상황이 답답했다. 친구들과 있었을 때는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순간은 생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족이 남보다 못할까.


연정은 늘 가던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오래된 그네에서 끼익 거리는 쇳소리가 났다. 어느새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비가 세차게 내렸다. 연정은 그네에서 일어나지 않고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그 비라도 맞아야 했다. 눈물이 보이지 않도록.

연정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울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은 잊은 지는 오래, 소리 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연정의 머리카락 끝과 턱에서 물방울이 하나 둘 맺혀 떨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다.


"연정아..?"


역시나, 고개를 들어보니 또 혜유였다. 혜유는 항상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귀신처럼 나타나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감싸 안아주었다.

혜유는 서둘러 연정에게 달려와 우산을 씌워 주었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곳에서, 혜유가 우산을 씌워 줌으로써 우산 안은 밝아졌다.


".. 혜유야."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무슨 일인데?"

".. 혜유야."

"나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 혜유야."

"응, 연정아."

".. 나 어떡해..?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아.."


연정의 두 눈에서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혜유는 그런 연정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가 그래, 너 안 사랑해 준다고."

"다.. 다 그래."

".. 적어도 난 아닌데."


혜유는 흐르는 연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난 너 사랑해. 주환이도, 민이도 너 사랑하고."


연정은 떨리는 눈동자로 혜유를 쳐다보았다. 혜유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도 몰랐어? 완전 바보 같아, 너.."

".. 미안해."

"뭐가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하지."


혜유는 연정의 손을 잡고 주변 가까운 카페로 갔다. 혜유는 연정의 몫까지 돈을 내주었다. 연정은 다음번에는 자기가 더 비싼 곳에서 사주겠다고 했지만 혜유는 손사래를 치며 친구끼리 음료 하나정도야 사줄 수 있다며 당황해했다.


연정은 젖은 채로 따뜻한 초코라테를 마셨다. 몸은 으슬으슬했지만 따뜻한 초코라테를 마시니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연정과는 반대로 혜유는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마셨다.


"저기, 연정아. 근데 왜 비 맞고 있었어?"

".. 그냥, 이것저것. 엄마가 나한테 한 말도 있고.."

"뭐라고 하셨는데?"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연정의 말에 혜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ㅇ, 왜..?"

"몰라, 그냥 내가 싫은가 봐. 나도 엄마 싫어."

"그래도 싫어하실 리가.. "

"네가 우리 엄마를 몰라서 그래. 우리 엄마는 나 싫어해."


혜유와 연정은 순간 서로 말이 없어졌다. 연정은 말없이 초코라테만 마시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사랑이란 건 모르는 집안이야. 어쩌면 우리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사랑을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이란 걸 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나는 사랑이란 걸 처음 안게 도우미 아주머니거든, 부모님이 아니라."

"그렇구나.."

"그래서 나도 사랑을 남한테 잘 못 줘. 어떻게 주는지도 잘 모르거든. 나도 마음 같아선 주고 싶다."

"천천히 알면 되지."

"글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뭐가 늦어. 사랑이란 건 원래 있다가도 없는 거고, 알다가도 모르는 거야."

"그럼.. 다행이고."


그 순간, 혜유의 휴대폰이 울렸다. 주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혜유는 주환의 전화를 받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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