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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불행은 늘 곁에

by 유진

그때, 혜유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연정이 뒤척였다. 혜유는 그런 연정을 보며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민을 한번 째려보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 민도 그런 혜유가 안쓰러웠는지 잠이 안 오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누웠다.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일어난 주환이 매점에서 먹을 것을 사 왔다.


"얘들아~, 밥 먹어야지!"


주환의 목소리에 혜유와 연정이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났다. 민은 자신은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혜유는 식혜 한 모금을 마셨다. 아침부터 식혜를 마시니 잠이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연정은 구운 계란을 까다 말고 주환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꽤 나왔겠는데..?"

"괜찮아, 괜찮아. 많이들 먹어. 이번에 용돈 두둑이 받아서 산 거니까."


연정은 주환을 신경 쓰면서 구운 계란을 한 입 먹었다. 구운 계란은 따뜻하고 맛있었다. 혜유는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체 하면 고생해."

"그래, 혜유야. 천천히 먹어 ㅋㅋㅋ"


연정은 혜유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혜유 그런 연정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찜질방을 나오고 놀이터로 향하는데, 연정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집에 가셔야 합니다."

".. 네?"

"사모님께서 찾으시니까요."

"잠시만요..!"


비서는 연정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연정을 차에 태우고 출발해 버렸다. 집에 도착하고 비서는 연정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에는 연정의 엄마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비서는 서재를 나가고, 연정의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 하나 못 찾을 줄 알았니?"

"..."

"어때? 집 나가니까? 집 나가서 실컷 노니까 네 뜻대로 하고 좋았어?"


연정이 아무 말도 없자 연정의 엄마는 책상을 내리쳤다. 순간 커피잔에 담겨 있던 커피가 출렁거렸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입이 있으면 말을 해!"

"..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요?"

"내가 널 그따위로 키웠니? 어른한텐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어?!"

"전 잘못한 게 없어요."


연정의 대답에 부들부들 떨던 연정의 엄마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네가 아무리 그렇게 반항해 봤자 내 손바닥 안이란다.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냥 개미 한 마리일 뿐이야, 연정아."

"그냥 제가 죽어버렸기를 바라지는 않으셨고요?"


연정의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래, 말없이 사라지면 나야 짐도 없어지고 가벼워서 좋지. 근데 연정아. 가출할 거면 좀 제대로 해. 이렇게 내 비서한테 걸려서 끌려오지나 말고. 쪽팔리지도 않니?"

".. 정말 제가 죽기를 바라셨던 거예요?"

"아무렴 어때. 전혀 내 딸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데."


연정은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소리쳤다.


"다른 애들 부모님들은 자식이 가출을 하면 밥은 잘 먹고 다닐까, 잠은 잘 자고 다닐까 걱정한대요! 근데 엄마는 어떻게 그래요? 내가 걱정되지도 않아요?!"


연정의 엄마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근데 내가 왜 걱정을 해야 하니? 네 맘대로 가출했으면, 가출 한대로 잘 살아야지. 내가 이렇게 내 시간 아깝게 너 찾아야 하니?"

"찾지 않았으면 됐잖아요!!"

"어떻게 그래, 남들 보기 쪽팔리게."


연정의 엄마는 서재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내리쬐며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감았다.


"내 시간 방해하지 말고 나가렴. 이제 네 일은 끝났으니."


연정은 서재문을 닫고 나갔다. 거실에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그냥 지나쳐 가려는 연정을 붙잡았다.


"진정해, 연정아."


도우미 아주머니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이게 내가 사과할 일이에요?"

"네가 사과할 일 아니란 거 알아. 그래도 진정해. 사람은 항상 마음가짐이 어떠냐가 중요한 거야. 먼저 흔들리는 사람이 지는 거야."

"이게 안 흔들려요? 자식 걱정이라곤 눈곱마저도 안 하는 부모한테 화를 안 내라고요?"

"화를 내지 말라는 건 아니야. 진정하라는 거야. 참으라고도 안 할게. 조금만 숨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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