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주환은 연정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네, 내 말이 조금이나마 너에게 힘이 돼서."
연정과 주환은 서로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주환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너 오늘 밤은 어디에서 자려고?"
"글쎄.. 사실 잘 모르겠어."
".. 나도 오늘은 집 들어가지 말까?"
주환의 말에 연정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주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응, 갑자기. 찜질방 가서 잘래? 너 찜질방에서 자본 적 없잖아. 물론, 나도 없고."
"그렇긴 하지..?"
"혜유도 부를까?"
"그러면 좋긴 하지만.. 될까."
"되든 안되든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전화 건다?"
"야, 잠깐만..!"
연정이 말리기도 전에 주환은 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혜유는 전화를 받았다. 주환은 다른 설명도 없이 찜질방에서 자자는 말을 했다. 혜유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연정이 있다는 말에 곧바로 승낙을 했고, 주환은 전화를 끊었다.
주환이 전화를 끊자마자 연정이 당황해서 말했다.
"진짜 전화하면 어떡해..!"
"뭐 어때, 친구인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너 진짜.."
".. 네 생각하곤 다르게 혜유는 좋아하더라."
"혜유는 원래 배려심 깊은 아이니까 그러지.."
"원래가 어딨냐, 원래가. 혜유는 다른 애였으면 이렇게 안 나왔을 걸? 너라서 나온 거야. 너 걱정되니까."
머지않아 혜유는 놀이터로 나왔다. 연정은 미안함에 평소와 다르게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그걸 눈치챈 혜유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와, 찜질방에서 자는 게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어. 옛날에 친구들이랑 딱 한 번 자봤는데.."
"나는 한 번도 없어. 연정아, 너도 없다고 했던가?"
"으응.."
혜유는 연정에게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기운이 왜 이렇게 없어~? 아, 배고프다. 가서 뭐 좀 먹자!"
그 순간, 혜유에게 전화가 왔다. 민이었다.
"여보세요?"
"농구친구 하자며."
"어.. 그렇지?"
"오늘 밤에 만날래?"
"근데 어쩌지.. 나 애들이랑 찜질방 가기로 했는데."
".. 웬 찜질방?"
"그냥 다 같이 친한 친구들끼리 한 번 가보기로 해서.."
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유는 미안함에 혹시나 하고 민에게 물었다.
"괜찮으면 너도 같이 갈래?"
".. 누구 있는데?"
"연정이랑, 주환이.."
".. 나도 같이 가도 되냐."
민의 뜻밖의 대답을 들은 혜유는 당연히 와도 된다며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혜유, 연정, 주환, 민까지 이 넷은 예고에도 없던 찜질방으로 향했다. 서로가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넷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찜질방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각자의 취향대로 음식을 시킨 뒤 양머리의 모양같이 만든 수건을 마리에 두른 채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연정과 주환이 먼저 잠에 들고, 혜유와 민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네가 안 올 줄 알았어."
"내가? 왜?"
"그냥.. 그렇게 친한 애들도 아니고.."
"나도 친구는 사귀어."
"알지, 아는데..! 음.. 아니다. 얼른 자, 너도."
민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누우려는 혜유를 향해 말했다.
"나 원래 이 시간에 안 자는데."
혜유는 누우려다 말고 다시 일어나 민을 쳐다보았다.
".. 그럼 언제 자는데?"
"새벽 5시 정도."
"미쳤나 봐..! 너 그래서 맨날 학교에서 피곤해 보였구나!"
"너는 학교를 왜 가는데?"
"친구도 보고, 공부도 하러 가는 거지."
"나는 자러 가는 거여서."
"자랑이다.."
혜유가 자리에 눕고도 민은 한동안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민이 신경 쓰였던 혜유는 눈만 감은 채로 계속 뒤척였다. 민이 그런 혜유를 보며 말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자."
민의 말이 더욱 신경 쓰였던 혜유는 결국 도로 일어났다.
".. 신경 쓰지 말래도."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너 진짜 답답해..!"
"내가 뭘.."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혜유는 괜스레 민에게 짜증을 부렸다. 민은 당황한 채로 혜유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