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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있잖아, 넌

by 유진

"연정아, 김연정..!"


희미하게 들려오는 주환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연정은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환이 연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그 많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시곗바늘은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 집 안 가?"

"벌써 9시야..?"

"응. 네가 너무 잘 자길래 안 깨우긴 했는데 너 1시간 잤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더라."


연정은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환은 먼저 입을 열었다.


".. 근데 아까 너 가출했다고 했잖아."

"응, 왜?"

" 가출한 건지 물어봐도 돼?"


연정은 주환의 질문에 아랫입술만 잘근 깨문 채 잠시 고민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주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무례한 질문을 했지? 그냥 잊어! 나는 항상 입 조심 해야 하는데.."

".. 집이 너무 답답해서."


주환은 말없이 연정을 쳐다보았다. 연정은 땅바닥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들이랑 조금 달라. 함부로 나갈 수도, 친구를 사귈 수도 없어. 조금이라도 우리 집 규칙에 어긋나면 그대로 끝이니까."

".. 어?"

"이 말 듣고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출한 게 괜히 가출한 건 아니라는 건 알아주라."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응"




혜유는 침대에 걸터앉아 연정이 남긴 쪽지를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좀 더 있다가도 난 괜찮았는데.."


혜유는 한숨을 쉬며 쪽지를 책상에 대충 올려두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혜선이 방으로 들어왔다.


"뭐 하냐?"

".. 연정이 집에 들어갔을까?"

"음.. 내 생각은 안 들어갔을 것 같은데. 연정이 표정 보니까 앞으로 단단히 집에 안 들어갈 모양이더라. 부모님 걱정하실 것 같은데.."


혜유는 혜선의 말을 들으며 천장만 바라보았다.




연정과 주환은 근처 놀이터로 향해 그네에 걸터앉았다. 연정의 가방을 본 주환이 물었다.


"가방 안 무거워?"

".. 조금?"

"네가 큰맘 먹고 가출한 거야 이해해 주겠지만.. 얼른 들어가. 신경 안 쓰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네."

"안 들어갈 거래도. 밖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안 들어갈 거야."


연정의 말에 주환이 장난스레 연정의 팔을 툭 쳤다.


"죽긴 뭘 죽어~. 넌 살아야 하는 존재야.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 정도는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연정은 땅바닥만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주환이 그런 연정을 보며 민망하게 웃었다.


"좀 징그러웠나?"

".. 어."

"그런가, 하하.."


주환이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연정은 한참 땅바닥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그래도 그런 말 들으니까 고맙긴 하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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