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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다른 아이

by 유진

점심에 있는 음악방송 때문에 혜유는 급식을 일찍 먹고 방송실로 향했다. 방송실에는 역시나 방송부 기장인 주환이 가장 먼저 와 있었다. 주환은 혜유를 발견하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


"일찍 왔네?"

"응, 밥을 좀 일찍 먹어서.."

"오늘 일찍 안 왔어도 됐는데. 2학년들이 맡기로 했거든. 하도 3학년들이 행사 있을 때마다 다 책임지니까.."

"앞으로 그럼 음악방송은 우리가 안 하는 거야?"

"응, 아무래도 그렇지. 오늘만 내가 확인차 와본 거야."

"그렇구나.."

"나도 이만 가야겠다. 나가자, 혜유야."

"아, 응..!"


혜유와 주환이가 방송실을 나가는데 1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주환의 앞으로 오더니 말했다.


"형, 애비가 어디 나라 사람이세요?"


그 말을 들은 주환의 두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환의 표정을 눈치챈 혜유가 서둘러 남학생을 붙잡고 물었다.


"야, 너 왜 그런 말을 해?"

"아, 뭐야.. 존나 못생긴 주제에.."


남학생은 혜유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혜유가 쫓아가려 했지만 주환이 혜유에게 쫓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듯 혜유의 옷 끝을 붙잡았다.


"저걸 그대로 도망가게 놔두라고?"

"난.. 괜찮아."

".. 너 안 괜찮아 보여."

"정말.. 괜찮아. 저런 말 이미 수도 없이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

".. 가볼게."


주환은 혜유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교실로 올라갔다.


"혜유야!"


멀리서 연정이 혜유를 보고 달려왔다.


"무슨 일 있었어? 너 표정이 왜 그래?"

"아니, 그냥.."


혜유는 연정에게 말을 할까, 하지 말까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방금 1학년 남자애가 주환이 보고 아빠가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비하하고 그대로 도망갔어.."

".. 뭐?"

"혼혈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당연히 안되지! 그 남자애 어디로 갔는데? 몇 반인 지는 알고?"

"전혀.."

"하, 진짜.. 주환이는 그걸 또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어?"

"응.. 전에도 그런 말 많이 들었나 봐. 말로는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안 괜찮아 보였어."

"그게 어떻게 익숙해지겠어..!"


혜유와 연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주환은 어렸을 적부터 금발로 인해 놀림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인가 여러 번 전학도 가봤지만 어딜 가나 돌아오는 건 늘 사람들의 시선뿐이었다.


쟤랑 놀지 말자.
우리랑 다르게 생겼어.
쟤 왜 저렇게 생겼어?
너네 나라로 돌아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여러 말들을 다 듣고 나니 처음보다는 괜찮아진 건 맞았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았다. 그래도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차별이나 비하를 받지는 않았는데, 오늘 다시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음으로써 주환은 그동안 들었던 말들이 떠올라 숨을 쉬기가 버거워졌다.


'어딜 가나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야. 난 괴물인 거야.'


주환은 자신의 모습이 미웠다. 또한 자신의 아빠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지내고 싶어..'


주환은 책상에 엎드려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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