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다고 해
그 후로도 연정은 더 이상 혜유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당연한 이유였다. 혜유 말고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는데,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 연정에게는 그게 큰 행운이었으니까.
혜유가 연정과 같이 다니지 않는 모습을 본 주환이 물었다.
"너 이제 연정이랑 같이 안 다녀?"
"어? 아, 으응.. 연정이가 다른 친구들이랑 놀겠다고 해서."
"그래..?"
"연정이가 기뻐 보였어. 그거면 됐지, 뭐."
혜유는 애써 괜찮은 척 주환에게 웃어 보였다. 주환은 그런 혜유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연정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린 뒤부터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쓰고 있던 두꺼운 안경도 벗어버리고, 단 하나 박혀있지 않던 교복 치마는 어느새 짧아져있었다. 화장도 안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른 학교 남학생이랑 노는 것은 기본, 수업시간에도 딴짓을 하다 걸려 교무실에 불려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도 모자라 담배까지 피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 연정을 혜유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혜유는 연정의 이런 면을 보고 친구 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혜유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웃으며 셀카를 찍고 있던 연정을 화장실로 불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
"그래,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너 되게 즐거워 보여.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그 누구도 상관할 바 아니지. 근데.. 담배 피운다는 소문 진짜야?"
"진짜면 어떡할 건데."
연정은 아무렇지 않게 거울을 보며 틴트를 발랐다.
".. 뭐?"
"내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냐고. 나 오히려 걔네들이랑 놀고 나서 더 밝아졌어. 너랑 있을 때는 맨날 비교질이나 당하고.. 근데 지금 봐봐. 걔네들은 날 이렇게 더 잘나게 만들어 줬어."
"넌 그게 지금 맞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됐어, 너랑 얘기 안 하고 싶으니까 다른 친구 만나서 지내. 너 인기도 많잖아. 안 그래?"
"야..!"
연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을 나갔다. 혜유는 그 자리에 서서 연정을 붙잡지 못했다. 그저 두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혜유가 한동안 어두운 표정으로 다니자 그 모습이 신경 쓰였던 민이 하교하는 혜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야, 신혜유."
".. 어?"
혜유는 민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았다. 민은 한동안 혜유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무슨 일 있어?"
".. 아니."
"근데 왜 그러는데."
"내가 뭐.. 나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 김연정 때문이야? 걔가 뭐라는데? 너랑 친구 안 하겠대?"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혜유를 본 민의 감정이 커지면서 순간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맨날 괜찮다고만 하지 말고 너도 좀 안 괜찮다고 해. 사람들은 다 너 괜찮은 줄 알아."
".. 민아."
"너 하나 안 괜찮다고 말한다고 사람들도 안 괜찮아지는 거 아니야. 너 안 괜찮으면 다른 사람들이 너 잡아줄 거야. 나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까 그냥 안 괜찮으면 넘어져도 돼."
민의 말을 들은 혜유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민을 바라보았다.
".. 그래도 돼?"
"어, 그래도 돼. 너 힘든 것보단 그게 나아."
혜유의 숨소리가 조금씩 떨리더니 이내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 안 괜찮나 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민아..."
민은 혜유의 곁으로 다가가서 혜유를 안아주었다. 혜유는 민의 품 속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