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이를 낳아야만 이해할 수 있게되는 말들
다들 말했다.
육아 힘들지... 그래도 힘든 것보다 행복한 게 더 커서 무마돼.
힘든 건 대충 예상이 되었다.
못 자면 당연히 힘들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하면 당연히 손목이 아프겠지?
가끔 듣는 아기 울음소리도 스트레스인데, 그 소리를 빈번히 들어야 하는 것도 당연히 곤욕일 것 같아.
미디어에서 봐왔던 육아 중인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늘어진 홈웨어, 관리가 안 된 것 같은 몸과 피부 상태, 안쓰러울 정도로 풀어헤친 머리 등등
그런 모습은 직관적으로 '힘든 거구나..!'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건 어떤 건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왜? 얼마나? 어떻게 다른 건데? 물어도 누구도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말은 "너도 낳아 보면 알게 돼~"였다.
그래서
'내가 아기를 낳게 되면, 같은 질문을 하는 친구들에게 꼭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야지.'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후, 친구들에게 가장 자주 한 묘사는 이런 거다.
"여행을 갔어. 조금 무리해서 비싼 호텔을 예약했어. 호텔 컨디션은 상상했던 거보다 훨씬 좋아.
일정이 끝난 후, 그 호텔에서 야외 반신욕을 하는 거야. 좋아하는 입욕제도 풀어놨어.
한 손에는 고급 진 와인 한 잔을 들고 있어.
와인은 예상했던 것보다 내 입맛에 잘 맞아! 화룡점정으로 마침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쳐.. !
그 '찰나의 순간' 느끼는 행복감 있지?
감히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찰나의 행복감을
아무것도 아닌 일상 중에도 몇 번씩 느껴."
그렇다. 완전한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일상'은 힘들지만, 완전히 행복한 '순간'들이 쌓여서 힘든게 무마된다.
특히 신생아 때부터 100일 동안은
이런 것(aka 이딴 것)까지 다 감동인가 싶을정도로 매순간 울림이 있다.
돌이켜보면 가장 유난스러웠던 건 이런 거다.
아기가 응가를 하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응가를 할 때마다
매번 "OO이가 응가를 했어요~!"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포함 온 가족이 "아이고~ 잘했다!" 하면서 일일이 기뻐했다.
응가는 하나의 (이딴 것의) 예시인 거고,
말 그대로 아이의 손짓, 몸짓, 눈동자 움직임 하나로도 온 가족이 반응하고 즐거워한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매일이 그랬다.
내일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두근두근하다.
지금 나의 아이는 태어난 지 773일차인데도, 여전히 매일이 새롭다.
오늘 갑자기 새로운 표현을 쓸 수 있어지고, 표정도 제스처도 다채로워진다.
매일 똑같은 것 같았던 내 일상이 매일 새롭게, 매일 다채롭게 가득 채워진다.
내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 것 같아도, 사실 매일이 새로운 날이라는 걸 아이를 낳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들 말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다 예뻐 보여.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조차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 예뻐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딱히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예뻐보였다.
어떤 아이를 봐도,
저 아이가 가족에게는 얼마나 큰 행복일까 .. 싶어서 어쩔 땐 그냥 울컥하기도 했다.
막연히 호르몬의 영향인가? 싶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100일 후 즈음, <기탄잘리>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접했다.
"밤의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만 별들은 미소를 나누며 서로에게 속삭입니다.
그렇게 찾아다녀봐야 헛된 일이지! 모든 것은 흠 없는 완벽 그 자체인 것을 "
그때 알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진리.
모든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온전히 완벽하게 태어난다는 걸.
아이를 낳으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는 사람들의 말은 진실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흠 없이 완벽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모든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 너그러워진 시선을 갖게 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