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작>, 지배와 피지배를 오가는 혼돈의 마작판 위에서

<마작> 리뷰

by 조종인

※ '씨네필매거진'에 기고했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업로드함을 밝힙니다.



1996년, 대만의 최대 도시 타이베이. 화려한 야경으로 대변되는 이 도시는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선사하지만, 그 내면은 혼돈과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는 곧 한 도시 안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역학은 이미 한 개인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혼돈 속에서 자신만의 법칙과 질서를 세우려 한다. 에드워드 양의 <마작>은 그러한 불확정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연적인 패배의 여정을 그린다.



홍어(당종성)는 세계의 불확정성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다고 믿는 소년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홍어는 룬룬(가우륜)에게 “감정은 피해자의 몫이다”, “세상은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 둘로 나뉜다. 둘 중 어느 쪽이 될지 선택하라”라고 말하며 세상의 법칙을 단언한다. “진정으로 바라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아버지의 충고에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여자뿐이다”라며 냉소적으로 받아친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는 것은 곧 그 질서에 복종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홍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톱니바퀴의 움직임을 자신이 통제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그 톱니 중 하나에 불과했다.


결국 세계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움직임은 그의 통제 바깥에서 조금씩 어긋난다. 룬룬의 서툰 통역에 의존해야만 이어지는 마르트(비르지니 르도엥)와의 대화는 번번이 엇나가고, 가까운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듯 인물들 사이의 오해가 켜켜이 쌓이며, 관계는 끊임없이 지배와 피지배의 경계를 넘나 든다. 홍콩(장첸)의 지배 아래 있다고 믿었던 앨리스와 안젤라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고, 오히려 그가 흔들리는 피지배자로 전락한다. 룬룬을 홍어로 착각한 깡패들은 그녀와 마르트를 납치하지만, 총을 빼앗기며 지배 관계는 다시 역전된다. 이처럼 <마작>의 세계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위치는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뒤바뀐다.


그 혼란의 끝에서 홍어는 몰락한다. 지배와 피지배가 오가듯, 빨간 불빛과 초록 불빛이 교차하는 공간 위에서,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자신이 복수하려 했던 대상은 잘못된 상대였으며,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확신은 단순한 착각이자 오만이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또한 세계의 불확정성 아래 놓인 무력한 개인이었음을. 세계라는 거대한 기계를 지배하려 한 인간은 결국 그 기계에 삼켜지고 만다. 개인 간의 관계는 수시로 뒤집혔지만, 세계와 개인의 관계는 한 번도 역전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세계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개인은 그 농간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배와 피지배를 정신없이 오가는 세계 속에서도,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룬룬과 마르트의 관계다. 그들 사이에는 지배나 피지배의 역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는 통제나 계산의 언어가 아닌,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랑’의 언어에 속한다. 에드워드 양은 이 관계를 통해 불확정성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소통의 불가능 속 절망을, <하나 그리고 둘>이 예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 대해 그렸다면, <마작>은 그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절망과 희망, 단절과 이해의 경계에서 에드워드 양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회색지대를 열어둔다. 그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세계의 혼돈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미약한 희망의 불빛이다.


<마작>의 세계는 완전한 혼돈 속에 놓여 있지만, 에드워드 양은 그 속에서 여전히 희망과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포착한다. 세계는 인간을 조롱하고, 모든 질서는 무너져 내리지만, 인간은 끝내 이해하려 한다. 그 집요한 몸부림이야말로, 에드워드 양이 ‘마작판 위의 인간들’을 통해 보여주려 한 마지막 숭고함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엔케이컨텐츠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622



keyword
이전 10화<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다시 출발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