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비평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의 질서를 크게 흔들지 않은 채, 그 위에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얹어놓는 서사 방식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이 그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행복한 라짜로> 역시 이러한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이 영화의 인물 라짜로에게는 언제나 기묘한 일이 따라붙는다. 그는 죽음 이후 아무렇지 않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성당에서 쫓겨난 뒤에는 그 안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이 그를 따라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러한 사건들은 분명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행복한 라짜로>는 그 사건에 대해 특별한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 영화 밖에서 그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 그 세계를 움직이는 연출들도 그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비현실적인 사건들에는 놀라워하면서도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마치 현실이라는 수면 위에 몇 방울의 판타지가 떨어졌을 뿐인데, 그 표면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결국 현실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판타지라면, 그것은 왜 이 이야기 속에 존재해야 했을까.
판타지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판타지는 대개 현실의 취약점이나 구멍을 보완하는 형태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판타지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판타지는 현실에서 기반해 탄생했음에도,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판타지를 이용해 현실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 시도는 예술 작품 안에서는 성공적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나, 그들이 관객들의 현실 속으로 진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관객들의 마음속에서는 판타지와 현실 간의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타지를 이용하면서도, 관객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 예시가 <빅 피쉬>,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두 이야기 속에서 판타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제한적이다. <빅 피쉬>의 판타지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알 수 없기에 신뢰도가 떨어지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판타지는 아이의 인식을 속일 뿐 그들을 둘러싼 참혹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판타지의 한계 때문에, 판타지는 현실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판타지의 무력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판타지의 한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관객들은, 비로소 이 이야기를 비현실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담아두게 된다.
현실이라는 내용물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얇게 덧입혀진 판타지. 그 이야기들은 '비현실'을 몰아내는 관객들의 검문을 통과해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음속에 두게 된 관객들은 저절로 판타지의 힘을 깨닫게 된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그 힘을. 역설적으로 판타지가 자신의 힘을 제한함으로써, 관객 내부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더 강하게 뽐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과 판타지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다시 <행복한 라짜로>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1980년대, 이탈리아의 인비올라타. 마을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채 살아온 마을 사람들은, 외부에서는 이미 소작이 법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루나 후작 부인의 소작농으로 일하며 착취당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모든 재화는 착취의 대상이 되기에, 마을 사람들은 부를 축적할 수 없고 항상 가난한 상태이다. 오랜 시간, 착취당해 온 마을 사람들은 점차 '착취'를 자연스러운 사회 질서로 받아들인다. 이 사회는 상층부에 루나 후작 일가가 위치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위 계급은 아래 계급을 착취한다. 이 '착취 사회'의 유지에는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착취를 당하는 사람도 누군가를 착취해야만 한다. 마을 사람들의 착취의 화살은 공통적으로 라짜로라는 순박한 마을 청년을 향한다. 다른 사람들의 착취를 군말없이 받아들인 라짜로는, 인비올라타의 계급 피라미드에서 최하위층을 자처한다. 최하위층에 있는 라짜로는 타인을 착취할 수 없다. 대신 그는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라짜로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영화는 언뜻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루나 후작 일가는 완전히 몰락했고, 한때 그들이 착취하던 인비올라타의 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이 변화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회를 지탱하던 피라미드 구조 자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꼭대기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특정한 인물이 아니다. 인물보다 더 거대한 개념, ‘자본’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이 없는 자들은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가진 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이 세상에 공고히 자리 잡힌 '자본주의'라는 질서이다.
라짜로는 부활하기 전에도, 부활한 후에도 일관되게, 바보같이 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세상의 모든 착취와 부조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것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희생적인 그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겹쳐 보인다. 약 2천년전 사망한 예수라는 인물, 그가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 재강림한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존재만으로, 그의 행동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예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부활이라는 현실을 초월한 사건조차, 이미 공고하게 굳어진 질서를 흔들기에는 무력하다. 라짜로가 어떤 기적을 겪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의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라짜로>에서는 ‘늑대’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늑대는 성자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처음 언급되며, 이후 탄크레디와 라짜로의 장면, 그리고 라짜로의 죽음과 부활의 경계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늑대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 은행 장면에서, 사람들에게 맞아 쓰러진 라짜로 앞에 늑대가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늑대는 그를 구하지도, 개입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이는 이 영화가 끝내 드러내는 하나의 결론처럼 보인다. 부활이라는 기적조차 이 세계의 질서를 바꾸지 못하며, 그 경계를 넘나들던 존재 역시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늑대는 그 무력함을 확인하듯, 말없이 사라진다.
<행복한 라짜로>의 사례는 앞서 언급한 <빅 피쉬>, <인생은 아름다워>와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두 영화에서 판타지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현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하거나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반면, <행복한 라짜로>에서 판타지는 현실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현실의 공고함,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부조리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빅 피쉬>와 <인생은 아름다워>가 판타지를 사용해 부조리를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 <행복한 라짜로>는 그런 포장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떤 화려한 포장을 하든 그 안에 있는 것은 부조리이고, 우리는 그 부조리와 계속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한다는 사실. 그 불편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을 <행복한 라짜로>는 적나라한 형태로 보여주었다.
우리 앞에 결코 깨지 못할 바위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불편한 감정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들고 있는 계란을 아무리 던져봤자 그 바위를 깨뜨릴 수 없다는 사실, 잠깐 잊고 넘어갈 수 있었던 불편한 진실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인다. 그러나, 어쩌면 예술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일과 다름이 없다. 계속해서 계란을 던진다고 하더라도 바위를 깨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바위에 계란을 던지다보면 그 모습에 감명받은 누군가가 함께 계란을 던져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계란 안에서 나오는 점액질이 뭉쳐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바위를 덮을지도 모른다. 현실이라는 바위를 직접적으로 깨뜨릴 수는 없을지라도, 수백, 수천, 수만 개의 계란을 던지다보면 언젠가 바위의 모습이 처음의 것과 달라질 거라는 희망. 그 실낱같은 희망이 예술과 현실 간의 관계를 붙들게 한다.
위 글은 씨네필매거진에 먼저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