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사랑의 본질을 찾아 헤매는 여정

by 조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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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로셀리니는 흔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언급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이탈리아의 현실과 노동자 계층의 절망을 카메라에 담아낸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당시 세계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로셀리니 역시 무방비 도시 (1945), 독일영년 (1948) 등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그 흐름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런 그의 영화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찾아온다. 바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만남이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거센 사회적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셀리니와 버그만은 세간의 시선을 감수한 채 함께 새로운 삶을 선택했고, 이후 공동 작업을 이어갔다. 이와 함께,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 세계 또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여행>은 그 변화의 시작점과 같은 작품이다.



한 점으로 수렴하는 과거,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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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부부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위태롭다. 이들의 관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애증(愛憎)'이다. 물론, 애증에는 '사랑(愛)'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들에게는 아직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고 쌓인 '증오(憎)'에 짓눌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분명 처음 시작했을 때는 활활 타오르던 불과 같았던 그들의 관계는, 현재 시간이라는 강한 폭풍 앞에 언제 꺼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과연, 이들은 여행 과정에서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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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이탈리아의 외관이나 풍경이 아니라 알렉스와 캐서린 부부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거대한 타임머신과 같다.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며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들은, 부부의 과거 혹은 이들이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현재로 호출한다. 즉, 이 여행을 통해 부부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지점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수렴 앞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박물관의 유적들과, 한때 캐서린을 사랑했던 시인 ‘찰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낭만적이고 아련한 사랑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낭만의 기억은 현재에 이르러 미련과 권태로 변질된다. 인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엇갈리는 소통은, 이미 공허해진 부부 관계의 현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편, 무덤에서 등장하는 방치된 유골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연인의 형상은 두 사람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두 사람을 선택의 기로에 밀어 넣는다. 이 권태로운 관계를 놓아버리는 대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 관계가 안고 있는 불안과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함께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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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를 선택하는 듯한 부부의 선택은, 결말부에서 돌연 방향을 틀게 된다. 군중 속에서 사라져 버릴 듯한 자신을 인식하고, 그 존재를 유일하게 확인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부부는 잊고 있었던 사랑의 본질을 떠올린다. 사랑이란 결국 수많은 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행위라는 것. 그렇게 과거에 묻혀 있던 사랑은 현재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부부의 미래 또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열리게 된다.


현실적인 부부의 관계를 다뤄오다, 갑작스럽게 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결말부는 관객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포옹이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화해의 순간은, 다시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균열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랑의 지속 여부가 아니다. 한때 서로를 완전한 타인으로 인식하던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서로를 ‘유일한 존재’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영속성으로 증명되는 감정이 아니라, 무수한 타인들 사이에서 단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 깨달음을 다시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를 지닌다.



현재 진행형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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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커플 혹은 부부의 사랑을 다룬 현대 영화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3부작>, 그리고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 등이 있다. 이 작품들 역시 훌륭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들이 <이탈리아 여행>이 만들어낸 문법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듯하면서도 결말부에서는 짜릿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이 영화는, 이후 로맨스 영화들이 반복해 변주하게 될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다.


로셀리니는 이 작품을 통해 모던 시네마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가 열어젖힌 그 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이탈리아 여행> 속 부부의 관계와 오늘날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붙들고, 현재를 견디며,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알아봐 줄 단 한 사람을 찾는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여행>은 오래된 영화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우리의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 TMDB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210643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을 약간 수정하여 게시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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