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스웨덴 영화, <렛 미 인> 리뷰 및 해석
*2008년에 개봉한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의 전개와 결말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스웨덴. 그 흰색 눈과 같은 소년 오스칼. 오스칼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애꿎은 나무에나 화풀이를 하는 소년이다. 새하얀 눈처럼 순백의 내면을 가진 소년 오스칼, 그의 내면으로 향하는 눈길 위로 누군가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 뱀파이어다. 흰 색채로 가득 차 있던 오스칼의 눈길 위에 엘리가 남긴 핏빛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흰색이었던 눈은 그녀가 남긴 빨간 흔적으로 더럽혀진다. 자신의 내면 위에 선명하게 남겨지는 그녀의 흔적을 보며, 오스칼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렛 미 인>은 출간 이후 다양한 영상 매체로 재탄생해왔다. 그 다양한 버전들 중에서도, 맨 처음 나온 스웨덴 영화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는 2008년 한국에서 처음 개봉했을 당시 약 1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작품의 생명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화는 이후 2015년과 2025년 두 차례나 재개봉되었고, 원작 소설 역시 한국에서 정식 출간되며 꾸준히 새로운 독자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베스트셀러라기보다는 오히려 ‘스테디셀러’에 가까운 행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대체 어떤 힘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하나씩 파헤쳐보도록 하자.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12세 소년, 오스칼. 동급생들의 괴롭힘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지만, 그는 좀처럼 직접적인 반항을 하지 못한다. 대신 애꿎은 나무에 나이프로 흉터를 새기며 분노를 삭일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라는 여자아이가 오스칼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차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하면서도 치명적인 분위기를 지닌 아이. 오스칼은 점점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그녀를 마음속에 품게 된 오스칼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지겠다고 다짐한다. 흰 눈처럼 순수하고 고요했던 그의 내면에, 어느새 엘리가 남긴 핏자국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순백의 세계는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사실 오스칼은 이미 폭력의 세계를 내심 갈망하고 있었다. 다만 그 세계로 직접 발을 내딛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엘리를 만난 이후, 오스칼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경계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오스칼은 설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들과 대치하게 된다. 이전에 오스칼에 속해있던 세계에는 '반항'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달라졌다. 오스칼은 막대기를 들어 상대를 내려치고, 피를 흘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폭력이 주는 쾌감에 도취되어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인다.
오스칼을 매료시킨 소녀, 엘리는 호칸이라는 중년의 남성과 함께 살고 있다. 호칸은 엘리에게 제공할 피를 수급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 날 호칸은 한 소년을 제압한 뒤 그에게서 피를 수급하다, 체포될 위기에 처한다. 소년의 일행이 사라진 소년을 찾으러 경찰과 함께 돌아온 것이다. 이대로 자신이 체포되면 엘리의 정체가 들통날지도 모른다 생각한 호칸, 그는 지니고 다니던 염산을 자신에게 들이부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호칸은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채로 병원에 수감된다. 그런 그에게 엘리가 찾아온다.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엘리에게 호칸이라는 존재의 가치는 이전과 달라졌다. 이제 호칸은 엘리를 위해 피를 구해다 줄 수도 없고, 혹시나 그녀의 정체를 발설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호칸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희생해 엘리에게 피를 공급한다. 호칸이 엘리에게 보여주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엘리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는 호칸에게서 아무렇지 않게 피를 빨아들이는 엘리의 모습에서, 그를 향한 사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엘리는 오스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엘리는 단순히 오스칼을 호칸의 대체품으로 대한 것일까? 호칸이 사용가치를 잃기 전부터 엘리가 오스칼을 만나왔음을 고려해 보면, 엘리에게 오스칼은 특별한 존재였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호칸이 죽은 이후, 엘리는 곧바로 오스칼의 방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엘리는 "들어오라고 말해줘"라는 말을 하며 그에게 허락을 구한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병실에서 호칸에게 같은 요청을 했던 엘리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엘리는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총 두 번의 허락을 구했다. 그리고 영화는 종종 이러한 반복 속의 차이를 통해 의미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이 두 장면은 무엇이 다른가. 먼저 엘리가 호칸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을 보자.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허락을 구하는 행위는, 상호 간 관계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낮추기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호칸은 현재 제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미 그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호칸이 엘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희생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엘리를 방 안으로 들여야 한다. 이 장면에서 호칸이 내린 ‘허락’은 형식적인 것일 뿐,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번에는 오스칼이 엘리 방 안으로 들이는 장면을 보자. 언뜻 보면 오스칼의 상태는 호칸과는 달라 보인다. 그는 자유의지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일 오스칼이 허가를 내려주지 않더라도, 엘리는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그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렛 미 인>에서 두 존재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은 두 사람의 내면세계와 다를 바 없다. 만약 엘리가 그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오스칼의 내면을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만약 엘리가 오스칼과의 관계를 정말 특별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면, 최대한 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엘리는 그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호칸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 엘리가 ‘갑’이고 호칸이 ‘을’이었던 반면, 오스칼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엘리가 ‘을’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둘의 관계는 단순한 갑을관계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오스칼은 엘리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에게 이끌리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다. 선택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오스칼의 선택은 이미 감정에 의해 기울어져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고정된 위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서는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위치가 뒤바뀌는 관계다. 시시각각 위아래가 변화하는 시소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의 권력관계는 계속 변화한다. 그리고, 그 시소는 두 사람의 눈높이가 동일해지는 수평지점을 끊임없이 갈망할 것이다.
엘리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오스칼은 그녀의 집을 종종 찾아간다. 어느 날, 엘리는 오스칼을 집 안으로 들인 뒤, 그와 이마를 맞댄 채로 이렇게 말한다.
잠깐 동안이라도 내가 되어봐. (Be me, for a Little While)
엘리와 오스칼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존재였다. 그렇기에, 두 존재가 아무리 상호 간 관용을 베푼다 하더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엘리는 오스칼에게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엘리의 이 말에는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말은 엘리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오스칼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동시에, 오스칼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욕망이 함께 스며 있다. 오스칼은 아마 전자의 의미로만 이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자신과 동일한 존재가 되어 완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의도를 표출하는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오스칼은 엘리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고, 그녀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 후 오스칼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오스칼은 일방적으로 엘리에게 헌신해야만하는 제2의 호칸이 되었을까, 아니면 호칸과는 다르게 엘리와 쌍방향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눈처럼 새하얀 오스칼이라는 존재 위에 엘리가 새빨간 피를 흩뿌린다. 그 흩뿌려진 피는 눈 아래 깊숙한 곳으로 스며든다. 이제 오스칼이라는 ‘눈(雪)’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이게 되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새빨간 존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녹여버림과 동시에 소멸하게 되는 것. 두 번째 선택지는 새빨간 존재가 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스칼은 두 번째를 선택했다. 이제 그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피와 폭력의 세계로 들어간 오스칼은 앞으로 많은 난관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제2의 호칸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오스칼이 엘리와 만나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다른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함께 마주하게 될 난관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 잔인한 사실을 오스칼은 너무나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되었다.
<렛 미 인>은 새하얀 눈과 새빨간 피의 색채를 모두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순수하면서도 잔인한, 섬뜩하면서도 치명적인,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한 어린아이의 내면, 마지막으로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까지. <렛 미 인>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인을, 우리는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씨네필매거진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