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리뷰 및 해석
영화는 보이스오버* 방식을 통해 시작된다. 카메라는 건물 안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있다. 그리고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소설에서 서술자가 작품의 설정을 설명해 주듯, 관객에게 건물 안 장식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준다. 다시 한번,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이야기가 울려 퍼진다. 이번에 카메라가 응시하는 것은 건물 안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에 비친다. 이윽고, 들이 보고 있는 것이 하나의 연극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그렇다면 영화의 오프닝에서 우리가 먼저 보았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연극의 무대였을까,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을까, 아니면 그 두 가지가 구분되지 않는 어떤 상태였을까.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메인플롯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가능하다.
이야기는 마리앙바드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펼쳐진다. X라는 남자는 A라는 여성에게 작년에 만난 적이 있지 않냐고 물어본다. A는 X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X는 A와 그가 만나 사랑을 했고, 끝내 A의 남편인 M으로부터 같이 도망치기로 했다고 주장한다.
메인 플롯이 이렇게 간단함에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혼란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메인 플롯으로 연결되어야 할 퍼즐 조각, 서브플롯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연속되는 장면들 사이에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 분명히 대화하고 있는 인물은 바뀌지 않았는데 갑자기 공간이 달라진다. 이전에 제시된 내용과 현재의 장면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혼란은 우연이 아니라, 영화가 처음부터 하나의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알렝 레네의 이 영화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제공하기보다,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경험 자체를 요구하는 듯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무엇 하나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남았다면, 그것은 영화 제작자의 의도가 정확히 먹힌 것이다.
이제부터 필자는 이 미로를 돌아다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도’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다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이 미로에는 다양한 출구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 지도가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없고, 영화를 완전히 설명해 줄 수도 없다. 대신 이 지도는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해석의 경로를 조금 더 넓혀준다. 미로에 들어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관객에게는 출구로 향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이미 출구를 발견한 관객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해석이, 그처럼 이 영화를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다르게 사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객은, 지금까지 보고 있던 장면들이 마치 하나의 연극에 속한 일부였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엔딩 시퀀스에 이르러, 오프닝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연극이 다시 한번 스크린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는 연극으로 시작해 연극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연극과 연극 사이, 그 긴 러닝타임 동안 스크린 위에 펼쳐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은 당연히,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연극'인 것이다. 이 영화의 대사에서 직접 언급되듯, 일반적인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요소들—시간, 공간, 그리고 인물의 이름—은 이 영화에서 거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다. 만약 이 영화가 하나의 연극이라면, 시간과 공간, 인물의 이름을 무시한 채 진행되는 연극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연극 안에 담긴 것이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라고 가정하는 대신, 여러 이야기들이 겹쳐져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펼쳐진, 여러 쌍의 커플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여 하나의 연극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었다면 어떨까. 예컨대 어떤 이야기는 봄, 호텔 정원에서 X1과 A1의 관계를 다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야기는 여름, 호텔 로비에서 X2와 A2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 있다. 혹은 겨울, 호텔 룸에서 X3와 A3의 서사가 펼쳐졌을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섞여서 하나의 연극으로 상연된 것이라면, 영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 인물의 이름이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 역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연극을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관객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단순한 호텔의 투숙객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이 연극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을 객석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수많은 관중들이 모여서 X라는 남성과 A라는 여성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일관된 논리의 흐름이란 게 없고 모든 게 뒤죽박죽인 것만 같은 이 영화의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 혹은 이미지가 몇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앞서 말했던 메인 플롯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M과 X가 벌이는 게임, 세 번째는 한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하나, '결국 M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것이다. X와 A가 함께 떠나기 위해서는 M이 A가 떠나는 것을 눈감아줘야 한다. M과 A가 벌이는 게임은 과정이 어떻든 간에 M이 승리한다. 마지막으로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도, 얼핏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M이 해답을 제시하면서 더 이상의 해석은 무의미해진다.
그렇다면 M은 '마스터(Master)'의 첫 글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전제를 깔아놓고 본다면,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이는 장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M이 A의 방에서 그녀를 총으로 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대체 뭐였을까? 그에 대한 해석은 지도 3과 4로 이어진다.
대화는 허공을 맴돌았고, 마치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또는 아무것도 지시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말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허공에 매달리고, 그러나 물론 똑같은 곳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루프물이란, 이야기 속에서 시간·사건·상황이 반복적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말한다. 최근 라이트노벨/웹소설/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 창작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구조이다. 대중적인 영화에서 이 구조를 차용한 케이스로는 <사랑의 블랙홀>,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X는 반복적으로 A에게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이야기하며 같이 떠날 것을 호소하지만, A는 X가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사건을 받아들여보자. 정말로 X는 그 사건을 겪었던 것이고, A는 그 사건을 겪었던 적이 없는 것이다. 즉, M이 A를 총으로 쏘는 사건 또한, 분명히 한 번은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나, X가 여러 번 과거로 되돌아와 미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영화의 엔딩 시점에서 그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X는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오면서 A를 데리고 나가려 했으나, M의 방해와 같은 여러 장애물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거듭된 시도 끝에 X는 M의 마음을 돌려 A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결국 A와 함께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만났습니다, 모든 모퉁이에서, 모든 덤불 뒤에서, 모든 조각 아래에서, 모든 연못가에서, 마치 이 정원에는 나와 당신만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지도 1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종류의 해석이다. 지도 1에서의 가정은 '다양한 시간과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여러 커플들의 이야기'였다. 지도 4에서는 '다양한 시간과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한 쌍의 커플 이야기'이다. 즉, 시간과 공간은 계속해서 바뀌고, 한 영화 안에 다양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은 X와 A, 그리고 M으로 바뀌지 않는다.
X와 M은 모종의 이유로 여러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기억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X는 한 세계의 기억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X의 기억 속에 있는 사건이 A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떤 세계의 이야기는 M이 A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으로 완결되었지만, X는 다양한 세계를 넘나든 끝에 X와 함께할 수 있는 세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이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엔딩 시퀀스이다.
지도 5는 지도 3을 살짝 다른 시선에서 해석해 본 것이다. 만약 A에게도 X와 같은 기억이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기억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결말부에 다다르기 전까지, X와 A 간에 펼쳐지는 대화의 흐름은 일관된 양상을 띠고 있다. X는 일방적으로 A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X는 이 주장에 명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렇게 수동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단순히 기억이 없어서가 아니라, 'A의 의견을 수락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같은 사건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기억이라는 상자를 보관하는 방식, 포장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고, 시간이 지나 창고에서 그 기억을 꺼내었을 때는 처음의 형태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 되어있다. 그렇기에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X와 A의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양팔을 벌리고 있는 A에게로 카메라가 가까워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정황상 X가 A에게 다가가고 있으며, A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X를 안아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X는 A에게 안기지 못한 채로 장면이 전환되어 버린다. 이 장면은 A가 X와 자신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그 기억을 받아들이는 걸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A가 X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순간, 둘의 관계는 확정되고 A의 기억은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의 '침묵'은, 이 영화의 서사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 나름의 저항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지도 1부터 5까지, 필자 나름의 해석을 늘어놓아보았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다양한 출구를 지닌 미로와도 같다. 그렇기에 이 미로를 어떻게 탐험할지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글에 나와있는 5가지 지도 중에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을 선별적으로 택해도 되고, 5가지를 모두 지닌 채로 탐험해도 좋다. 하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이 5가지의 지도 외에 자신만의 또 다른 지도를 찾는 것이다. 그럴수록 이 미로를 탐험하는 재미가 늘어날 것이다.
*보이스오버(Voice-over) : 영화와 TV 등에서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화자의 목소리 (내레이터의 서술 등)를 가진 표현 방식.
이 글은 영화 전문 웹매거진 '씨네필매거진'에 먼저 게재한 글임을 밝힙니다.
https://www.cinephile.kr/news/articleView.html?idxno=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