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부치고 나물을 삶고 고기를 재우던 부산스러웠던 전날의 한바탕 덕에 설날 아침 밥상이 볼만하게 차려졌다. 도와주는 가족들과 별말 섞음도 없이 아내는 묵묵함을 넘어 경건하게 온 정성을 쏟는 듯했다. 이번 설에는 꼭 어머니 모시고 와 떡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아내는 벼르고 별렀었다. 그렇게 준비한 아침상 중앙에 장모님이 앉으셨다.
장모님을 요양원에 모시자 결정한 날, 아내는 밤새 울었다, 다른 선택이 없는 현실이지만 불쌍하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했다. 무남독녀인 아내는, 홀로 30년을 살아오며 자식 돌보기로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의 이 마지막 여정이 그렇게도 가슴 아프다 목을 놓았다.
심상치 않다 느끼기 시작 한 건 이년 전쯤부터였다. 장모님은 말수가 없어지고 행동이 굼떠지며 식사가 원활하지 않았다. 일시적인가... 혹시나... 병원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정기적 병원 치료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증상이 더해지더니 결국 치매를 만나셨다. 요양보호사의 방문 돌봄도 있었고 지역을 달리 있는 아내가 주말마다 먼 길을 내려가 보살피고 했다. 반복되는 전화나 식사의 어려움, 생활의 불편 등의 치매 증상들을 아내는 힘들어도 열심히 견뎌냈다. 하지만 한 시간씩의 무단외출 증상이 시작되면서 간병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말려서 되는 일도 감시한다고 지켜질 수도 없는 안전의 문제였다. 주변에서 요양시설 얘기가 당장 나왔지만, 평소 장모님이 요양원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셨고 아내 역시 남 손에 맡기는 게 도저히 못 할 짓이다 완강했었다. 그러다 역시 무단외출의 장모님이 길에서 넘어져 인근 주민 도움으로 겨우 돌아온 겨울 초입에 아내는 더 큰일이 우려된다는 얘기에 고집을 내려놓았다. 수소문 끝에 집에서 가까운 요양원을 구했고 무사히 모셔놓고선 매일 찾아가 식사를 돌봐드리고 있다. 외출을 막았으니 일단은 안전했다. 당연히 한 번씩 여기가 어디냐며 집에 가겠다고 역정도 내시지만 아내는 할 수 있는 모든 변명으로 적응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떡국과 준비한 음식들을 장모님의 숟가락에 얹어드리며 아내는 설날 아침 다 같이 식사하니까 참 좋지요, 이건 누가 했고 저건 누가 만들었고 과하지 않은 수다로 계속 말을 걸었고 대답은 없어도 장모님은 이게 내 보답이다는 듯 많이 잡수셨다. 골고루 잡수셨고 맛있다 반응을 주셨다. 수없이 많았던 아침 식사 가운데 이렇게 마음 아프게 정성을 들였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장모님도 아내도 할머니의 큰 사랑으로 참하게 성장한 딸아이들도 속으로는 울고 있을 안타깝고 행복한 설날 아침 식사였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장모님도 지혜롭고 든든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자식이라도 얼굴과 잠자는 모습으로 생활과 처지를 단박 아셨던 분이셨다. 남달랐던 총명함을 잃어버리고 딸의 이름이며 나이까지 놓쳐버리신 장모님을 보면서 아내는 이런 날의 어머니가 오늘을 기억해 주실까 그저 한순간 행복을 찾으셨으면 작은 바람으로 식사를 거드는데, 장모님은 지금 자식이 가장 기뻐할 게 뭔지를 본능적으로 아셨다. 입맛이 있을 리 없고 밥맛 제대로 느끼시기 힘들다 싶은데도 앞에 앉아 열심히 음식을 챙기는 딸의 마음에 양껏 받아줌으로 충분한 갚음을 하셨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마음 아파했던 아내는 정성 담은 떡국 한 그릇 준비했고 장모님은 그런 딸을 마주한 체 한동안 숟가락을 멈추지 않으셨다.
앓고 계신 병의 본질이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이라 고문스러운 희망을 품는 것은 외려 경계할 일이지만, 내년 이맘때도 정성과 화답이 함께하는 식사자리를 가질 수 있기를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그렇게 이어지기를 다 같이 기원했던 설날 아침이었다.